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2026년도 의대 증원 유예 제안을 정부에 재차 강조하면서 윤석열 대통령과 또다시 갈등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해 12월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여당에 입성한 후 드러난 갈등만 4번째다. 그간 당정갈등에 '국민 눈높이'를 강조하면서도 한발 물러서는 듯한 태도를 보인 한 대표다. 하지만 전당대회를 통해 당심을 등에 업고 여당 대표에 올랐다는 점에서, 이번 갈등 국면이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한 대표가 27일 밤 페이스북을 통해 의대 증원 유예 제안 사실을 공개하면서 "더 좋은 대안이 있다면 더 좋겠다"고 한 부분은 사실상 윤 대통령을 향한 압박과 다름없다. 대통령실이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지만 여당 대표로서 입장을 재차 고수했기 때문이다. 앞서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논란이나 김경수 전 경남지사 복권 등 당정갈등이 불거졌을 때, 확전을 자제했던 것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지난 1월 김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으로 불거진 1차 당정갈등 때도 윤 대통령과 충남 서천 화재 현장에서 만나 머리를 숙인 게 대표적이다. 김 전 지사 복권 논란 때도 언론을 통해서 반대 의사가 알려졌을 뿐, 한 대표는 명확히 "반대한다"는 의사를 강조하진 않았다. 다만 총선을 앞둔 지난 3월 당정갈등 때는 좀 달랐다. 이종섭 전 주호주대사 부임 논란 때는 "공수처는 즉각 소환을 통보해야 하고, 이 대사는 즉각 귀국해야 한다"고 했고, 황상무 전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의 발언 논란에 대해서도 "본인이 스스로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고 직격했다. 총선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선거 악재를 우려한 후보들의 지지가 뒷받침됐고, 결과적으로 이 전 대사의 귀국과 황 전 수석의 사퇴를 이끌어 냈다.
이 때문에 의정갈등 해법에 중재자를 자처하고 나선 한 대표의 이번 선택도 취임 초 확실한 결과를 예상하고 나선 전략적 결정이란 얘기가 나온다. 특히 의료개혁이라는 정권의 성과물보다 당장의 민심에 더 민감한 당 내부 여론이 한 대표의 선택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이번 제안은 친윤석열(친윤)계로 분류되는 인요한 최고위원이 제안했을 뿐만 아니라 친윤계 의원들까지도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게 이를 방증한다. 당의 한 초선 의원은 "당장 지역구에서 의료 공백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며 "여당에서 뭐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어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내 친윤계 일부에서는 한 대표의 차별화에 우려를 보내는 시선도 여전하다. 아직 윤 정부가 반환점을 돌기도 전부터 당정갈등이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게 여권 전체에 유리하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당의 한 중진 의원은 "한 대표가 공개적으로 이견을 표출하는 건 좋지 않다"며 "부적절하고 미숙한 방식"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