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율방범대원 활동을 그만둔 지가 언젠데…."
전북 완주군에 사는 50대 A씨는 최근 이웃으로부터 황당한 얘기를 전해 들었다. 2년 전 자율방범대에서 탈퇴했는데도 방범대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버젓이 등재돼 있더라는 것이다. A씨는 "나처럼 유령 자율방범대원이 5명이나 된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며 "순간 자치단체로부터 지원받는 활동 경비는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궁금해지더라"라고 말했다.
범죄 예방 등 경찰의 치안 보조를 담당하는 봉사 단체인 자율방범대를 둘러싸고 허술한 규제 시스템과 행정 당국의 느슨한 관리 감독이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상당수 자율방범대가 A씨처럼 유령 자율방범대원을 조직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돈을 빼먹는데도, 경찰 등은 뒷짐만 지고 있는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자율방범대원은 "자율방범대원들 사이에선 자치단체가 지원하는 경비는 '먼저 먹는 사람이 임자'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고 털어놓았다.
실제 완주 지역의 B자율방범대는 얼마 전 완주군이 지급한 간식비 등을 모아 대원들 부부 동반 여행 경비와 회식비로 사용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이 자율방범대에서 활동했던 C씨는 "자동차 보험료나 주유비 등 자율방범대 운영 경비를 분기별로 지원받는데, 봉사라는 미명 아래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는 식으로 돈을 빼먹는 게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현재 각 자치단체는 자율방범대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관할 자율방범대에 운영 경비를 지원하고 있다. 자율방범대가 조별로 매주 정해진 요일마다 야간 순찰 활동을 벌인 뒤 활동 대원 이름과 서명, 활동 시간 등을 적은 근무 일지를 제출하면 분기별로 1인당 4,000원의 간식비와 차량 주행 거리를 반영한 주유비를 지원하는 식이다. 완주군은 관내 15개 자율방범대에 운영비·단체 보험 등 명목으로 분기별로 200여만 원씩 지급하고 있다. 자율방범대 지원 예산은 해마다 늘고 있는 추세다. 올해 전북 지역 자율방범대 288개(방범대원 6,380명)에 책정된 지원금은 33억8,600만 원으로, 2년 전보다 13억7,600만 원이 늘었다.
이처럼 자율방범대가 각 자치단체에서 예산을 받아 쓰고 있지만 당국의 관리·감독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상당수 경찰서와 자치단체는 자율방범대원이 실제 순찰을 도는지 등을 직접 점검하지도 않고 자율방범대 측이 제출한 근무 일지 등 서류만 보고 경비를 지급하고 있다. 완주경찰서 관계자는 "봉사 목적으로 참여하는 분들이기 때문에 방범 활동을 강요할 순 없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지역 사회 안전과 범죄 예방을 위한 순찰 및 범죄 신고, 청소년 선도·보호라는 자율방범대 활동이 겉돌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율방범대 '자율' 운영이 도덕적 해이로 이어지면서 나랏돈 빼먹기라는 결과를 낳았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한 자율방범대원은 "서로 오랫동안 한동네에서 알고 지낸 이웃이다 보니 문제가 있어도 이를 지적하기보다 모른 척하거나 쉬쉬하기 일쑤"라고 말했다.
특정 간부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자율방범대 내부 구조도 문제다. D자율방범대 관계자는 "방범대장은 공식 회의를 거치지 않고 입김이 센 간부 몇몇이 추대하고, 방범대장 등을 역임했던 대원이 다시 대장을 맡기도 한다"고 했다.
문제가 불거진 해당 지역 현 자율방범대장은 "과반수 이상 참여해 회의를 거쳐 간부를 선출했고, 두 달 전쯤 명단 정리를 해 경찰서에 전달했다"며 "여행은 개별적으로 비용을 내서 다녀온 것이지 지원금을 용도 외에 사용하진 않았다"고 해명했다.
홍승표 전주대 경찰학과 교수는 "자율방범대에 국민 세금이 쓰이는 만큼 관행적인 부정 부패를 근절하기 위해선 경찰과 자치단체의 관리·감독이 더 강화돼야 한다"며 "방범대장 등 소수 간부가 대원 모집과 지원금 분배 등 모든 운영 권한을 휘두르는 구조적 허점을 보완하는 법 개정도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