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노후건축물 '재건축'이 화두다. 공동주택, 즉 아파트, 연립주택, 빌라 등은 우리나라 주거 형태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 건물이 노후화되면 건물에 거주하는 주민들도 삶의 질이 저하된다. 외형적으로 점점 낡은 모습을 드러내는 건 기본이고, 전기ㆍ상하수도ㆍ단열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내부 문제도 하나둘 쌓인다. 주차난은 물론, 주인 모를 적치물이 쌓이기 시작해 공간 활용도 점점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마음대로 수리하기도 어렵다. 단독주택과 달리 공동주택은 수리할 때 '합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재건축은 이런 노후화된 기존 공동주택을 철거하고 주거 환경을 완전히 새롭게 건설하는 작업이다. ‘살고 싶은 공간’으로 환경을 개선해 도시 정주화(定住化)를 유도한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현실적으로는 부족한 도심 내 주거공간을 공급함으로써, 직주근접(직장-주거지가 가까운) 생활권을 제공하는 역할도 한다.
문제는 재건축은 시간도 상당히 걸리고, 부동산 가격 폭등의 주요인이기도 하다. 이뿐만 아니라 기존 시설물을 완전히 철거해야 해서 폐기물로 인한 환경 오염도 크다. 재건축은 대체로 몇배수의 가구수가 증가하기도 해서 각종 도시 인프라의 한도치를 자극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인공지반으로 단지 전체를 공사하는 형식으로 빗물이 흡수되지 않아 가로유수량 급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2000년 초 ‘공동주택 리모델링’이 새롭게 주목받았다. 외관을 새롭게 구성하거나 내부 기능 공간을 확대 재편하는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적용된다. 또 재건축처럼 자산가치를 크게 높일 수도 있다. 계획적 측면에서도 장점이 있다. 설계ㆍ계획 단계에서 미처 다뤄지지 못했던 유휴 공간을 새롭게 개발해 공동체 공간을 추가로 확보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완전히 노후화된 공동주택이 아니라면, 공동주택 리모델링도 가치와 의미 측면에서 모두 충분하다.
아파트 리모델링은 재건축에 비해 사업 규모가 작아 작업 속도가 빨라야 정상이다. 문제는 전체 사업 진행 속도가 실제로는 느리다는 점이다. 이는 제도의 부실함 때문이다.
우선 관련 법(주택법 제2조 제25호)에 따르면, 리모델링을 “건축물의 노후화 억제 또는 기능 향상 등을 위한 행위”로 언급하면서 몇 가지 법적 내용을 나열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법적 기준들이 상당히 경직돼 있다. 무엇보다 현상에 대한 분석과 이론이 연구된 뒤 정책이 발표되는 것이 아니라, 정책에서 먼저 선행된 후 관련 연구들이 정책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형식이 됐다.
특히 2001년 9월 공동주택 ‘리모델링’ 제도가 발표ㆍ시행되면서, 문제점이 하나둘 나타났다. 이에 제도를 보완하거나 항목을 추가하길 24년. 여전히 성공 사례는 드물다. 원인이 뭘까? 결론부터 말하면, 리모델링을 통해 만들어진 공간 품질이 여러 한계를 보이며 만족스럽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한된 구조 안에서 억지로 평면이 만들어졌다.
다른 나라에서는 리모델링을 ‘적응적 재사용’(Adaptive reuse)이라고 표현한다. 기능과 용도의 전환을 전제로 한 리모델링이나 리노베이션(Renovation)보다 확대된 개념이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에서 진행된 ‘적응적 재사용’의 사례들을 보면 가능성과 대안을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최근 미국 뉴욕시는 맨해튼 지역 주거난에 대처하기 위해 사무실용 건축물을 주거용으로 전환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사실 사무실 건물을 주거용으로 바꾸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예를 들어, 각 가구에 모두 설치해야 하는 욕실과 화장실은 자칫 배관 및 하중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또 주거용 집에는 방을 만들어야 하는데, 사무실 건물에선 각 방의 창문을 만들 공간이 만만치 않다. 이런 기술적 한계에 도전하면서 사무실 공간을 공동 주거로 바꾸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뉴욕 플라자 4번지(4 New York Plaza)로 알려진 ‘더 데일리 뉴스 빌딩’이다. 1969년 지어진 사무소 건물로, 22층의 건물을 1,300실 이상의 주거 공간으로 리모델링 중이다. 내진 보강을 비롯해 각종 배관 및 전기 시스템 등 물리적 보강뿐만 아니라, 옥상이나 피트니스 센터 등 공간 프로그램도 대대적으로 바꾸고 있다.
맨해튼의 원월스트리트 리모델링 사례도 눈여겨볼 만하다. 1931년에 50층 규모로 건축된 아르데코 스타일(Art Déco style)의 마천루로, 1965년 36층의 별관이 증축됐다. 뉴욕 마천루의 대표적 건물로, 건축사적 가치도 인정받아 뉴욕의 랜드마크로 지정되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규모는 작지만,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나 크라이슬러 빌딩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다. 역사성과 건축미학적 가치 모두 인정받은 고층 건물이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요구에 순응하게 된 것이다.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통해 566개의 주거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오스트리아 빈의 가스 저장소의 변신은 더욱 놀랍다. 가소메타 주거단지(Gasometers of Vienna)는 1870년 도시에 가스를 공급하기 위해 건설된 무려 150년이 넘는 건물이다. 도시가 확장되고 가스 공급 역할을 할 수 없게 되면서 1986년 가동이 중지된 채 버려졌다. 하지만 도시 주거공급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주거시설로 탈바꿈했다. 가소메타 사례를 보면 공동주택 리모델링의 구조적 기준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게 된다.
첫째, 공동주택 리모델링에 대한 개념이 명확히 재정립돼야 한다. 재건축이나 신축 같은 개념과 다른 접근으로 해야 한다. △지속 가능한 건축의 수명 연장 △환경친화적 건축 정책 △기존 주택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생활 인프라를 적극 재활용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동시에 도시 내 부족한 주거 공간을 빠르게 제공한다는 의미도 담아야 한다.
둘째, 기존 건축물의 구조적 안전성을 세분화해야 한다. 현재 리모델링의 가장 큰 장애가 바로 구조적 안정성에 대한 시각이다. 앞서 가소메타 같은 150년 전 가스저장소도 새로운 공동주택으로 변신했는데, 현재 우리나라의 구조적 기준은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다. 바로 이 점이 리모델링을 포기하게 만드는 핵심이다.
그렇다면, 1980년대 이후 강화된 각종 법률들은 의미가 없는 것인가? 그렇진 않다. 연대별로 각종 내진구조에 대한 법이 강화됐고, 2000년 이후는 일본에 필적할 만한 구조기준을 갖췄다. 즉, 리모델링 가능한 15년 연한의 기준을 건축준공, 즉 입주시점과 맞물려 세분화해야 하는 것이다. 적어도 2000년을 기점으로 수평ㆍ수직 증축의 한계와 범위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수평 증축 또는 별동 증축도 마찬가지다. 이를 위해서 건폐율 및 용적률에 대한 전향적 접근이 필요하다.
동시에 입지에 대한 해석도 보다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보행권의 가능성이 높은 다중 역세권 공동주택은 보다 적극적으로 용적률과 건폐율, 층고완화가 필요하다. 특히 이런 도심화된 공동주택은 대중교통이 충분한 경우가 많아 주거 공급지의 최우선 대상지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뿐만 아니라 환경관련 각종 규제는 단열기준 강화로 일조량 등의 영향을 점차 받지 않고 있다. 동시에 형태에 대한 리모델링적 해법도 가능하다. 대체로 판상형인 경우는 수평 증축과정을 통해 구조적 약점을 극복할 수도 있다.
기존 소극적 공동주택 리모델링 정책으로도 성공적 사례가 이미 있다. 1971년 지어진 전형적 서민 아파트를 기존의 냉난방 단열이나 성능, 공간확장 등을 통해 새롭게 재구성된 첫 번째 리모델링이 진행된, 서울 마포구 용강동 시범 아파트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후 진행된 서울 서초구 방배동 궁전아파트는 복도식을 계단식으로 바꾸고, 건축면적외 부지를 지하공사를 해서 주차장이나 주민편의 시설들을 만드는 등 보다 적극적인 변화를 시도했다. 이를 통해 리모델링의 가능성을 한 단계 올렸다.
법과 제도의 섬세한 대응이 마련된다면 모든 건물을 철거하고 재건축하는 방식이 아닌 리모델링 방식으로도 환경 개선과 도시기능의 재편, 도시 내 주거공급 확대 등 대부분의 효과를 만들 수 있다.
건축사사무소 NCS lab대표. 국내 최초로 도시경쟁력 개념을 담은 <공간(스페이스) 마케팅> <스페이스 마케팅 시티>, 건축의 다양한 관점을 담은 <영화 속 건축 이야기> <건축가의 특별한 여행법> 등의 저서가 있다.
광진구 우영미 사옥(서울 광진구)을 건축 설계해 독일 IF Design Award 건축부분 본상(2023년)을 받았고, 경부선 가산디지털 역사 현상설계에도 당선되는 등 다수의 건축설계 작품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