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유족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던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항소심에서는 벌금형 감형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4-3부(부장 이훈재)는 사자명예훼손,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등 혐의로 기소된 정 실장에게 27일 벌금 1,200만 원을 선고했다. 검찰이 구형한 벌금 500만 원보단 무겁지만 징역 6개월을 선고한 1심 판결보단 가벼운 형이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사회적 지위, 범행의 사회적 파장 정도 등에 비춰보면 죄책이 상당히 무겁다"며 "사회적 논란이 야기되자 글을 자진 삭제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한 점을 감안했다"고 밝혔다.
정 실장은 2017년 9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노 전 대통령이 부인 권 여사와 아들의 '금품 뇌물' 사건에 대한 검찰 조사 후 벌어진 부부싸움 후 사망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려 유족에게 고소당했다. 논란이 확산하자 그는 "노 대통령의 비극적 결심이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보복 때문이었다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올린 글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검찰은 2022년 9월 정 실장을 벌금 500만 원에 약식기소했다. 약식기소는 혐의가 가볍다고 판단되면 정식재판 대신 벌금이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법원에 청구하는 절차다. 두 달 후 재판부는 사건을 직권으로 정식 재판에 회부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박병곤 판사 심리로 열린 재판에서 검찰은 다시 한 번 벌금 500만 원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박 판사는 정 실장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명예훼손 사건에선 드물게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당시 박 판사는 "정 (당시) 의원 글은 악의적이거나 매우 경솔한 공격에 해당하므로 표현의 자유로 보호받을 수 없다"고 질타하며 '수사가 오랫동안 지연된 점을 형량에 참작해야 한다'는 정 실장 측 주장을 물리쳤다.
판결 이후 박 판사가 과거 SNS에 친야당 성향의 입장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는 글을 게시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권에선 "법관의 정치적 성향이 판결로 표출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1심에서 자신의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한 정 실장도 항소심에 와서는 "명예훼손의 고의나 비방의 목적이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유죄라 하더라도, 실형은 너무 무겁다는 취지였다.
항소심 법원은 정 실장 혐의를 모두 유죄로 판단했지만, 범행 이후 그의 태도를 참작해 벌금형을 택했다. 재판부는 "원심의 형은 무거워 부당하지만, 이 사건의 제반 사정에 비춰보면 약식기소에서부터 당심에 이르기까지 벌금 500만 원이 선고돼야 한다는 검찰의 의견도 적정하다고 보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2심 선고 직후 정 실장은 "재판부 판단을 존중한다"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가족들에게 송구스러운 마음을 다시 한 번 전하고, 늘 건강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영위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소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