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탄광 노역에 강제 동원된 피해자의 유가족들에게 일본 전범 기업이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1심 판결이 4년 8개월 만에 나왔다.
광주지법 민사11부(부장 유상호)는 27일 강제동원 피해자 9명의 유족이 미쓰비시 머트리얼 주식회사(전 미쓰비시 광업)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재판부는 원고 중 6명은 강제동원 피해를 인정, 4명에게는 일본기업이 배상금 1억원씩을, 다른 2명에게는 1,666만 원과 7,647만원을 각각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나먼지 유족 3명의 청구는 기각됐다.
미쓰비시 머트리얼의 전신인 미쓰비시 광업은 일본내 27개 작업장과 한반도 전역에 37개 탄광 및 군수공장을 운영한 전범기업이다. 유네스코 산업유산으로 등재돼 공분을 산 군함도 하시마탄광과 사도광산도 미쓰비시 광업이 운영하던 사업장이었다. 미쓰비시 광업 작업장에 강제로 끌려가 사망한 조선인은 공식 확인된 인원만 32명에 달한다.
소송 원고들 중 생존한 피해자는 없으며, 피해자들은 가미야마다 탄광, 아케노베탄광, 비바이탄광 등에 강제 동원돼 노무자로 고초를 겪었다.
고 이상업씨는 16살이던 1943년 11월 당시 일본 후쿠오카현에 소재한 가미야마다 탄광에 강제로 끌려가 지하 1,000m 굴속에서 채굴·채탄 작업과 석탄을 싣고 운반하는 중노동을 했다. 그는 함께 끌려간 조선인들의 숱한 죽음을 목격한 후 죽을 고비를 넘기며 탈출하기까지의 경험을 수기로 남겨 출판(사지를 넘어 귀향까지)하기도 했다.
전남 곡성군 출신인 고 윤재찬씨는 1942년 일본 후쿠오카현 미쓰비시 광업 탄광에 동원됐고, 일본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며 잦은 구타를 당해 다리를 다치고 청력을 상실하는 등 평생 후유증에 시달렸다.
피해자 지원 단체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과 유족들은 지난 2020년부터 현재까지 모두 9건의 소송을 제기했다. 일본 정부가 소송 서류를 제때 전달하지 않으며 시간을 끌다가 4년 8개월 만에 처음으로 1심 선고가 나왔다. 나머지 8개 일본 기업에 대한 8건의 손해배상 소송은 아직도 심리 중이다.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피고 기업은 미쓰비시 머티리얼, 홋카이도탄광기선(도산 기업), 일본제철, 미쓰이 광산(현 니혼코크스공업), 히타치조선, 후지코시강재, 니시마츠건설 등이다.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대표는 "국제적 송달 협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가 송달 여부를 제대로 확인해주지 않은 채 수년 간 시간을 끄는 비상식적인 상황이 매번 반복되고 있다"며 "일제 강제동원과 관련된 모든 소송들이 송달 문제로 2~3년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허송세월만 보내는 실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