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국가 전체 연구개발(R&D) 예산안을 29조7,000억 원으로 편성했다. 지난해 전례 없는 예산 삭감 파동을 일으킨 지 1년 만에 R&D 예산 규모를 원상복구한 셈이다. 과학기술계는 R&D 예산 복원에 안도하면서도 들쭉날쭉한 정책에 따른 여파가 계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가 27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한 ‘2025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도 전체 국가 R&D 예산은 올해 26조5,000억 원보다 11.8% 증가한 29조7,000억 원이다. 이는 2023년 예산 31조1,000억 원에 가까운 수준이다.
예산안에서 가장 힘이 실린 부분은 '국가 전략기술 주권 확보'다. 관련 예산 규모는 올해 5조4,000억 원에서 내년 7조1,000억 원으로 1조7,000억 원 늘었다. '3대 게임체인저' 기술로 규정한 △인공지능(AI)·반도체 △첨단 바이오 △양자 기술에 3조5,000억 원이 투입된다.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 기술 개발에도 지난해보다 252억 원이 늘어난 859억 원이 배정됐다.
예산 삭감 여파가 컸던 기초연구에는 2조9,400억 원을 배정해 전년 대비 11.6% 증액했다. 기후변화나 신종 재난에 대응하는 공공안전 R&D 예산은 올해보다 3,000억 원 늘어난 3조7,000억 원이다. 이 중 리튬 기반 배터리 화재 대응에 51억 원이 새로 투입될 예정이다.
정부는 이번 예산이 ‘원복’이 아닌 ‘증가’라고 강조했다. 2023년 예산에서 R&D 성격이 뚜렷하지 않은 사업을 덜어내면 실질 R&D 예산은 29조3,000억 원이었다는 이유에서다. 유병서 기획재정부 예산총괄심의관은 “지난 1년간 나눠주기식, 기업 보조금 성격의 과제를 줄이고 혁신 도전형 R&D 지원을 늘리는 방향으로 제도 개편을 해왔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R&D다운 R&D’를 확대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작 연구 현장에선 구체적으로 어떤 게 R&D다운 R&D인지, 연구비 증액과 감액의 기준이 뭔지, 예산 삭감의 원인으로 지목된 '카르텔' 문제는 해결했는지 등이 충분히 공유되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여전하다. 국가 미래를 좌우할 R&D 예산을 밀어붙이기 식으로 삭감했다가 1년 새 도로 늘리면서 원복이니 증가니 논하는 자체가 의미 없는 '숫자 맞추기'란 비판도 나온다.
일자리를 잃은 대학원생이나 박사후연구원 등 갑작스러운 예산 삭감으로 피해를 본 연구현장 약자들에 대한 구제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 역시 설득력을 얻는다. 정부는 이공계 인건비 보장을 위해 석사과정생 월 80만 원, 박사과정생 110만 원 수준을 지급하는 ‘한국형 스타이펜드(연구생활장려금)’ 제도를 신설하겠다고 밝혔지만, 피해자 구제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미봉책 아니냐는 것이다. 윤종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원자력및양자공학과 교수는 “연구과제 자체가 줄어 예전에는 한 학기 석·박사생 2~3명을 받던 걸 지금은 1명밖에 못 받는 현실에서 스타이펜드는 임시책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국가 전략’을 명목으로 일부 수월성 위주의 연구에만 투자를 몰아주는 방향성이 과학기술계의 공감을 얻을지 의문이라는 견해도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공과대학 교수는 “요즘 과학기술 트렌드는 AI, 전기차 등 큰 틀에서도 세부 방향과 목표가 계속 바뀌면서 발전하는 양상”이라며 “소수 전략 기술에만 장기적으로 예산을 집중하기보다 다양한 분야에서 균형 잡힌 기회를 만드는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