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29.7조, 2년 전 수준 회복... "자리 잃은 인력 구제 방안은 어디에"

입력
2024.08.27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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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총 R&D 예산 올해보다 11.8% 증가 
3대 첨단 기술, 공공 안전 분야 투자 집중 
이공계 석·박사과정 연구생활장려금 지원
"3명 받던 학생 이미 1명으로 줄였는데..."
원복 아닌 증액?... 현장 혼란 책임 안 지나

정부가 내년 국가 전체 연구개발(R&D) 예산안을 29조7,000억 원으로 편성했다. 지난해 전례 없는 예산 삭감 파동을 일으킨 지 1년 만에 R&D 예산 규모를 원상복구한 셈이다. 과학기술계는 R&D 예산 복원에 안도하면서도 들쭉날쭉한 정책에 따른 여파가 계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리튬 배터리 화재 대응에 51억 투입

정부가 27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한 ‘2025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도 전체 국가 R&D 예산은 올해 26조5,000억 원보다 11.8% 증가한 29조7,000억 원이다. 이는 2023년 예산 31조1,000억 원에 가까운 수준이다.

예산안에서 가장 힘이 실린 부분은 '국가 전략기술 주권 확보'다. 관련 예산 규모는 올해 5조4,000억 원에서 내년 7조1,000억 원으로 1조7,000억 원 늘었다. '3대 게임체인저' 기술로 규정한 △인공지능(AI)·반도체 △첨단 바이오 △양자 기술에 3조5,000억 원이 투입된다.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 기술 개발에도 지난해보다 252억 원이 늘어난 859억 원이 배정됐다.

예산 삭감 여파가 컸던 기초연구에는 2조9,400억 원을 배정해 전년 대비 11.6% 증액했다. 기후변화나 신종 재난에 대응하는 공공안전 R&D 예산은 올해보다 3,000억 원 늘어난 3조7,000억 원이다. 이 중 리튬 기반 배터리 화재 대응에 51억 원이 새로 투입될 예정이다.

나눠먹기 주범 카르텔은 사라졌나

정부는 이번 예산이 ‘원복’이 아닌 ‘증가’라고 강조했다. 2023년 예산에서 R&D 성격이 뚜렷하지 않은 사업을 덜어내면 실질 R&D 예산은 29조3,000억 원이었다는 이유에서다. 유병서 기획재정부 예산총괄심의관은 “지난 1년간 나눠주기식, 기업 보조금 성격의 과제를 줄이고 혁신 도전형 R&D 지원을 늘리는 방향으로 제도 개편을 해왔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R&D다운 R&D’를 확대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작 연구 현장에선 구체적으로 어떤 게 R&D다운 R&D인지, 연구비 증액과 감액의 기준이 뭔지, 예산 삭감의 원인으로 지목된 '카르텔' 문제는 해결했는지 등이 충분히 공유되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여전하다. 국가 미래를 좌우할 R&D 예산을 밀어붙이기 식으로 삭감했다가 1년 새 도로 늘리면서 원복이니 증가니 논하는 자체가 의미 없는 '숫자 맞추기'란 비판도 나온다.

일자리를 잃은 대학원생이나 박사후연구원 등 갑작스러운 예산 삭감으로 피해를 본 연구현장 약자들에 대한 구제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 역시 설득력을 얻는다. 정부는 이공계 인건비 보장을 위해 석사과정생 월 80만 원, 박사과정생 110만 원 수준을 지급하는 ‘한국형 스타이펜드(연구생활장려금)’ 제도를 신설하겠다고 밝혔지만, 피해자 구제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미봉책 아니냐는 것이다. 윤종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원자력및양자공학과 교수는 “연구과제 자체가 줄어 예전에는 한 학기 석·박사생 2~3명을 받던 걸 지금은 1명밖에 못 받는 현실에서 스타이펜드는 임시책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국가 전략’을 명목으로 일부 수월성 위주의 연구에만 투자를 몰아주는 방향성이 과학기술계의 공감을 얻을지 의문이라는 견해도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공과대학 교수는 “요즘 과학기술 트렌드는 AI, 전기차 등 큰 틀에서도 세부 방향과 목표가 계속 바뀌면서 발전하는 양상”이라며 “소수 전략 기술에만 장기적으로 예산을 집중하기보다 다양한 분야에서 균형 잡힌 기회를 만드는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조소진 기자
전하연 인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