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출신인 파벨·니콜라이 두로프 형제가 2013년 선보인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은 미국 외에서 개발된 애플리케이션(앱) 중에서는 드물게 세계적 성공을 거둔 앱이다. 종단 간 암호화(발신부터 수신까지 거치는 여러 단계에서 암호화를 계속 유지하는 방식) 기술을 적용, 메시지 송수신자 외에는 누구도 훔쳐볼 수 없는 강력한 보안성으로 유명해지며 한국에서도 많은 이용자를 확보했다. 혹시 모를 압수수색이나 해킹 등에 대비해 텔레그램만 쓰는 사람도 적지 않다. 올해 8월 기준 텔레그램의 월 활성 이용자 수는 세계에서 약 9억5,000만 명. 10억 명 돌파가 눈앞이다.
사실 텔레그램의 보안성은 순기능이 적지 않았다. 정부의 메신저 검열이 만연한 러시아, 이란, 벨라루스, 홍콩 등에서 반정부 민주화 세력의 소통 도구 역할을 한 게 대표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악의를 품은 이들의 안전한 놀이터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n번방 사건'으로 불린 디지털 성착취, 최근 딥페이크 음란물 제작 및 유포 사건도 모두 텔레그램 안에서 벌어진 일이다.
지난 24일(현지시간) 프랑스에서 텔레그램 최고경영자(CEO) 파벨 두로프가 체포된 것을 계기로 텔레그램의 이 같은 양면성이 국제사회의 고민거리로 떠올랐다. 아동 포르노, 사기, 마약 밀매, 테러 옹호 등 범죄 모의와 불법·유해 콘텐츠의 텔레그램 내 확산을 방치했다는 게 두로프의 범죄 혐의다. 현재 한국을 비롯, 프랑스와 비슷한 문제를 겪는 국가가 많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전 세계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다만 '체포'라는 강제적 조치의 적절성 논란도 만만치 않다. 플랫폼의 책임 범위, 각국 정부의 개입 수준 등에 대한 기준을 마련할 분수령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텔레그램의 장단점이 뚜렷한 만큼, 두로프 체포를 둘러싼 시선도 첨예하게 갈린다. 프랑스 당국은 텔레그램의 위험성을 감안할 때 두로프 체포가 불가피했다는 입장이다. 러시아의 반발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6일 "법치주의 국가에선 실제 생활과 마찬가지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시민 보호 및 기본권 존중을 위해 법이 정한 틀 내에서만 자유가 허용된다"고 반박했다. 텔레그램이 기본권 보호에 소홀했던 탓에 사법부가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는 취지였다.
SNS 업계에서도 프랑스 정부를 옹호하는 의견이 적지 않다. 페이스북의 대(對)테러 책임자로 일했던 브라이언 피시먼은 미국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텔레그램은 10년 동안 (극단주의 무장 단체) 이슬람국가(IS)의 핵심 허브였고, 아동 성학대 게시물을 용인해 왔으며, (각국 사법부의) 합리적인 법 집행을 무시해 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두로프 체포에 대해 "콘텐츠 검열의 차원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단순히 콘텐츠 관리에 소홀했다는 게 아니라, '자유 및 프라이버시 존중'이라는 명목 아래 최소한의 관리조차 하지 않는 운영 정책 자체가 근본적으로 틀렸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언론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억압이라는 반론도 거세다. 엑스(옛 트위터) 소유주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미국 등 자유 진영의 헌법은 언론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며 "이런 일(플랫폼 운영자 체포)이 벌어지면 나중에는 밈(meme·온라인 유행 콘텐츠)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처벌당할 수 있다"고 비꼬았다.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 럼블의 크리스 파블로브스키 CEO도 "검열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법적) 조치를 취하는 것은 레드라인(금지선)을 넘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두로프 체포에는 그동안 '데이터 제공' 요구에 순순히 응하지 않았던 텔레그램을 길들이려는 의도가 깔려 있고, 이를 용인해 버리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각국 정부가 특정 플랫폼을 억압하려 할 때, 프랑스의 선례를 명분으로 내세울 가능성이 크다는 게 반대론자들의 우려다. 두로프에 대한 프랑스 사법 당국의 수사가 향후 어떻게 귀결될지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