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사이버 성범죄 수사를 위해 해외 업체에 협조를 요청한 건수가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큰 논란이 되고 있는 딥페이크(사람 이미지를 합성하는 기술) 등 사이버 성범죄가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27일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이 텔레그램이나 구글 등 해외 소재 기업에 사건 수사를 위한 협조를 요구한 건 지난해 8,961건으로 2022년 1만166건보다 줄었다. 올해는 7월까지 5,161건이었다. 전체 건수는 감소 또는 소폭 증가하는 추세인데 사이버 사기·성폭력·테러·기타 4가지로 분류된 죄종 가운데 사이버 성폭력 협조 요청만 유독 늘어나고 있다. 작년에 1,512건으로 전년(1,468건)보다 많았고, 올해 7월까지 1,043건으로 작년 수치를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
경찰이 어느 업체에 협조를 요청했고 얼마나 거부당했는지 집계된 수치는 없다. 다만, 이용자 간 대화를 암호화하는 등 강력한 보안성을 지녀 불법 음란물 유통 통로로 여러 차례 이용된 텔레그램은 대부분 협조를 거절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과 관계자는 "해외 소재 기업엔 우리나라 영장 효력이 미치지 않는 탓에 임의 협조를 구한다"며 "구글이라든지 이런 곳은 웬만하면 회신을 주는데 텔레그램은 그냥 응답이 없다"고 했다. 서울 일선 경찰서에서 수사팀장으로 근무한 다른 경찰관도 "텔레그램은 협조 요청에 아예 응하지 않는다"면서 "함정 수사 등 다른 방법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수밖엔 없다"고 귀띔했다.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2019년 'n번방' 수사 때도 경찰은 2020년 2월부터 8월까지 텔레그램에 수사 협조 메일을 7번 보냈으나 한 번도 답을 받지 못했다. 결국 경찰은 트위터(현 엑스)나 페이스북, 가상화폐거래소 등 다른 플랫폼에서 파악한 물증으로 조주빈 등을 붙잡았다. 20대 남성 '엘'(가칭)이 벌인 이른바 '제2 n번방'이 터졌던 2022년에도 윤희근 전 경찰청장이 "텔레그램을 상대로 한 강제수사는 전 세계 어느 기관도 못 하고 있어 미국 인터폴과 공조하고 있다"고 국정감사에서 밝혔다. 올해 5월 서울대, 인하대에 이어 중고교나 군인 등 특정 직업군에서도 인공지능(AI)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한 음란물을 제작한 것으로 드러나 문제가 되고 있는데 역시 텔레그램이 사용됐다.
지난 24일(현지시간) 텔레그램 창업주 파벨 두로프 최고경영자(CEO)가 프랑스에서 체포된 것도 사실상의 성범죄 방조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프랑스 수사당국은 텔레그램이 범죄에 악용되고 있는데도 제대로 이를 막으려는 조치를 하지 않은 혐의를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