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관광공사가 9월 추천 여행 테마로 ‘공간의 재활용’을 선정했다. 쓸모를 다하거나 낙후된 건물이 예술을 입거나 역사를 기억하는 공간으로 재탄생한 곳이다.
부천아트벙커B39는 원래 '삼정동 소각장'이었다. 1995년 문을 연 소각장은 이태 뒤 다이옥신 파동으로 꾸준히 환경 오염 문제가 제기돼 결국 2010년 폐쇄됐다. 용도를 다한 소각장은 2018년 복합문화공간 '부천아트벙커B39'로 다시 태어났다. 과거 소각장 구조를 보존하면서도 멀티미디어홀, 벙커, 에어갤러리 등 다양한 예술공간을 갖추고 있다. 현재 현대 미술 전시와 친환경을 주제로 한 행사와 공연 등이 열리고 있다.
부천에는 급격한 도시화의 유산을 복원한 사례가 더 있다. 복개천이었던 심곡천은 2017년 도심 녹지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초대형 미디어아트 작품을 선보이는 레노부르크뮤지엄, 국내 만화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소개하는 한국만화박물관도 함께 둘러볼 만하다.
1999년 폐교한 시골 초등학교가 조각가, 서양화가, 서예가를 만나 2001년 평창무이예술관으로 변신했다. 기존 학교 틀을 그대로 살린 채 운동장은 조각공원으로, 교실은 전시실로 꾸몄다. 나무 바닥 복도, 칠판, 풍금 등을 그대로 두어 옛 시골 학교 정취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예술관을 꾸린 작가들의 전시 외에 화덕 피자 만들기를 비롯한 다양한 체험을 이용할 수 있다. 주변 풍광이 한눈에 들어오는 갤러리카페는 감자 피자 맛집으로 소문이 났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운영하며 실내 전시관은 오후 6시까지 문을 연다. 무이예술관이 터를 잡은 곳은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주 무대인 봉평이다. 인근에 이효석문학관, 효석달빛언덕, 봉평장(봉평전통시장) 등이 있다. 메밀꽃이 흐드러질 9월 6일부터 15일까지 평창효석문화제가 예정돼 있다.
충주 오대호아트팩토리는 정크아트 작품이 폐교를 가득 채운 공간이다. 버려진 학교에 생기를 불어넣은 건 국내 정크아트 1세대 오대호 작가다. 철과 플라스틱, 나무 등 쓸모를 다한 재료에 기계공학 기술과 상상력을 입혔다. 움직이는 요소를 가미한 키네틱아트 작품을 작동해볼 수 있고, 아트바이크를 타고 운동장을 누빌 수도 있다.
남한강 목계나루 근처의 코치빌더는 옛 담배창고를 개조한 카페다. 밤과 고구마빵 맛집으로 입소문이 났지만 방문객의 눈길을 잡는 요소는 따로 있다. ‘코치빌더(Coach builder)’는 고객의 주문에 따라 독창적인 신차를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전시된 올드카와 클래식카 역시 주인장의 취향을 반영해 개성적으로 복원했다. 현대자동차 1세대 그랜저와 기아 콩코드 등 옛날 차량이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계기판, 변속기, 휠 등 차량 부품을 장식 소품으로 활용한 것도 돋보인다.
거창근대의료박물관은 1954년 개원한 옛 자생의원을 개조한 시설이다. 거창 최초의 근대병원이었다. 2006년 문을 닫으며 설립자 고(故) 성수현 원장의 유족이 시설을 기부하고 거창군청이 부지를 매입했다. 2013년 문화재청 등록문화재로 지정받은 후 2016년 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병원동을 개조한 의료전시관에는 당시의 처치실, 수술실, X선실 등의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일반인에게 낯선 옛 수술기구와 의료 도구가 눈길을 끈다. 의사가 거주했던 주택동에는 그 시절 사용했던 다양한 생활용품이 전시돼 있다. 때때로 박물관 앞마당에서 힐링 콘서트가 열린다.
전일빌딩245는 5·18민주화운동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건물로, 그날의 진실을 알리는 공간이다. 벽면 곳곳에 헬기에서 사격한 총탄의 흔적을 볼 수 있다. 245는 헬리콥터 등 비행체에서 발사된 것으로 결론이 난 탄흔의 개수다.
지상 10층과 지하 1층 중 광주콘텐츠허브로 사용 중인 5~7층을 제외하면 전시 공간이다. UH-1H 모형 헬리콥터, M60 기관총, 빌딩 주변을 재현한 디오라마 축소 모형, 왜곡의 역사, 진실의 역사 등을 주제로 한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곳은 탄흔의 원형이 보존된 10층과 9층이다. 목격자들의 증언을 참고해 제작한 멀티어트랙션 영상도 재생 중이다. 당시의 방대한 자료를 보관 전시하는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이 인근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