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넥슨 게임 영상의 '집게손 사상검증'이 불거졌을 당시 피해자에 연대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던 여성·시민단체들이 살해 협박당한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가 6개월 만에 중지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반면 기자회견을 주도한 시민단체는 미신고 집회로 고발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27일 경기북부경찰청에 따르면 한국여성민우회(민우회)를 비롯해 9개 시민단체 구성원들을 살해하겠다는 협박 글이 올라와 신고된 사안에 대해 경찰은 지난 5월 수사중지를 결정했다.
앞서 지난해 11월, 넥슨의 '메이플스토리' 홍보 영상 속 여성 캐릭터가 남성 비하 목적의 집게손가락 손 모양을 취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담당 애니메이터로 지목된 여성 직원이 온라인에서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 하지만 해당 장면 콘티를 그린 건 40대 남성 직원으로 파악됐고, 제작사도 "의도하고 넣은 동작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에 여성·시민 단체들이 '게임 업계 사상검증 규탄' 기자회견을 예고하자 회견 당일인 11월 28일 오전 1시 30분쯤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등에는 시민단체 회원들을 해치겠다는 협박 글 4개가 올라왔다. 작성자는 "낼 넥슨 페미X들 모이면 칼부림 할 거다", "최소 5명 이상 흉기로 살해할 자신이 있다" 등의 문구와 함께 칼 사진을 올렸다.
글이 올라온 지 약 20분 만에 신고가 접수돼 경찰이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지만 작성자는 인터넷주소(IP) 추적을 피하려고 가상사설망(VPN)을 통해 접속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2월 경찰은 해외 서버에 형사사법공조 요청을 넣었지만 회신을 받지 못해 5월 수사중지 결정을 내렸다.
경찰 관계자는 "사안의 심각성을 알기에 빠르게 수사에 착수했지만, 해외 서버의 협조에서 막혔다"며 "회신을 받으면 수사를 재개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당시 기자회견을 주도했던 민우회 사무실에는 회견 후 항의성 전화가 빗발쳐 업무가 마비되기도 했다. 이에 단체는 이틀간 전화 92통을 한 전화번호를 특정해 서울 마포경찰서에 고소했다. 경찰은 지난 7월 업무방해 혐의로 40대 A씨를 송치했다.
한편 민우회는 이 기자회견 이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고발됐다. 기자회견에서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쳤기에 미신고 집회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다. 고발장을 접수한 경기 분당경찰서는 지난 5월 민우회를 송치했다.
민우회 측은 여러 단체가 모여 진행하는 기자회견이다 보니 손팻말을 통해 각 단체의 입장을 알리고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하려는 목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특정 대답으로 유도하는 질문을 피했을 뿐 현장에 참석한 20여 명의 취재진과도 소통했다는 입장이다.
민우회는 "결국 살해 협박한 사람은 잡지 못하고 기자회견을 연 시민단체만 '불법 집회'로 몰아간 상황"이라며 "여성 노동권이 위협받지 않도록 문제 제기하는 시민단체들에 이런 협박이 놀이처럼 반복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