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인들의 관용어 '칼날을 움켜쥐다'

입력
2024.09.0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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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넬리아 산초- 2


(이어서) 넬리아 산초는 귀국 후 ‘미의 왕관’을 벗고 대학에 복귀, 전공을 의학에서 미디어로 바꾸고 영자 신문 ’마닐라 불레틴(The Manila Bulletin)’ 등에 글을 기고하며 학내 시위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1973년 말 그는 필리핀 공산당 등 반정부단체 기부 혐의로 체포됐고 그 과정에서 함께 숨어 지내던 교수 두 명이 권총으로 사살되는 장면을 목격했다. 정부 관계자와 인맥이 있던 아버지 도움으로 그는 이내 석방됐지만, 곧장 공산당 군사조직인 ‘신인민군’에 입대, 재정위원장 지위에까지 올랐다. 필리핀 언론은 그를 ‘게릴라들의 여왕’ ‘반군의 여왕’이라고 불렀다.

그는 1976년 체포돼 내란 혐의로 기소됐고 재판 없이 2년 6개월간 구금된 채 모진 고문을 당했다. 1978년 석방된 후 옥중에서 만난 활동가와 결혼(1998년 혼인 무효), 1남1녀를 낳았고 혼자 아이들을 키우며 정치범과 활동가 자녀들을 돌보는 보육센터를 설립해 운영했다. 1984년 전국 규모의 여성 인권단체 ‘가브리엘라’의 원년 창립 멤버로도 활약했다. 그 단체는 2003년 ‘가브리엘라 여성당’을 창당, 다수의 여성 하원의원을 배출했다. 산초는 1992년 2차대전 일제 위안부 피해자 증언을 확보하고 그들을 돕는 ‘릴라 필리피나(Lila Pilipina)’를 조직해 50대 은퇴할 때까지 일했고 유엔개발계획(UNDP)과 글로벌 여성 인신매매 방지 연합(GAATW) 등의 활동도 도왔다.

1993년 영국의 한 저널에 기고한 에세이에 그는 필리핀인이 일상적으로 쓴다는 ‘칼날을 움켜쥐다(Kapit sa Patalim)’란 표현을 소개한 일이 있었다고, 뉴욕타임스가 그의 부고에 썼다. 힘든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이 절박한 삶의 질곡과 마주했을 때 마지막 희망을 위해 어떤 일까지 할 수 있는지 일깨우는 표현이라고 한다.

한국의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한 필리핀 가사도우미(가사관리사) 100명이 최근 한국에 입국했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