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한 줄기 불빛을 배경으로 동공이 풀린 채 시멘트 벽에 머리를 기대고 비스듬히 엎드린 고라니. 붉은빛의 긴 띠를 남기고 질주하는 자동차. 야생동물 출현을 조심하라는 경고문. 아스팔트 위에 방황하고 주저앉은 뱀과 소쩍새…
2005년 8월 18일 자 1면과 9면에 독자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화보가 '로드킬… 고속도로가 야생동물의 무덤으로’(박서강 기자)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여러 장의 사진으로 구성된 포토에세이가 고속도로에서 희생당한 야생동물의 참혹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긴 설명도 필요 없었다. 로드킬 수치에 대한 짤막한 소개만 곁들였을 뿐인데, 잔잔하지만 오래가는 파장을 우리 사회에 낳았다.
조류, 양서류, 파충류까지 합치고, 국도나 지방도 사고까지 포함한다면 2005년 당시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로드킬이 수만 마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반려동물은 물론, 야생동물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일었다.
동물복지에 대한 여론 흐름을 전환시킨 사진 특종은 기자의 열정과 동료의 배려가 함께 이뤄낸 결과물이었다. 그해 6월 19일부터 7월 12일까지 전국 고속도로에서 야생동물이 활동하는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연 4,000㎞를 이동하는 노력이 필요했다. 박 기자는 ‘로드킬’을 취재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불확실성이었다고 밝혔다. "30일이 넘는 취재 기간 한 컷도 담지 못했던 기간이 절반 이상이었다. 살아있는 야생동물들을 찍어야 하는데 대부분 사고가 나면 바로 죽어버려 생생한 현장감을 전달하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얼마나 더 해야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올지도 불확실했고 출장 기간 빈자리를 동료 사진기자들이 대신해야 하는 부담도 있었다". 시속 100㎞ 이상으로 차들이 달리는 고속도로 촬영에 따른 위험은 오히려 큰 문제가 아니었다.
이런 노력 속에 얻어낸 포토에세이는 신문 게재일이 속한 ‘180회 이달의 기자상’(2005년 8월)을 비롯해 사내특종상과 대한언론인상, 한국보도사진전 대상, 신낙균 사진상, 한국기자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박 기자는 당시 수상소감에서 “통계수치를 이용한 몇백 건의 기사보다 몇 장의 사진으로 야생동물들이 처참하게 죽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