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중국과 북한, 러시아 등의 핵 위협 심화에 대응하기 위해 개정된 핵 운용 지침을 승인했다는 보도가 나오며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 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백악관은 ”개정된 핵 운용 지침의 내용은 기밀사항이라 밝힐 수 없다“면서도 개정된 새 지침에 주한미군 전술핵 재배치와 같은 내용은 없다고 단언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외교적 수사로 봐야한다. 핵무기 재배치는 일개 대변인이 사실 여부를 확인해줄 수 없는 중대하고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국이 주한미군에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할 가능성이 있는지, 있다면 어떤 옵션들이 있는지를 미리 분석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안보 상황에 전술핵 재배치가 필요하다면 미국이 재배치를 결단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는 외교 전략을 짜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많은 언론과 전문가들은 주한미군 전술핵무기 재배치에 대해 ‘현존 자산’에만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전투기나 폭격기에서 투발하는 B61 전술핵폭탄이나 오하이오급 전략원자력잠수함에 실린 트라이던트 II 탄도미사일을 통해 발사되는 W76-2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들 자산은 한반도나 그 주변에 상시 배치하는 것이 대단히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미국의 국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문가들은 보지 못하고 있다.
B61은 항공기에서 투하하는 자유낙하폭탄이다. 다시 말해 핵폭탄을 실은 항공기가 목표 상공까지 날아가야만 투발이 가능하다. 주한미군에 B61이 배치되더라도 주한미군 배치 전투기가 비스텔스 전투기인 F-16이라면 이를 이용해 평양·영변 등에 핵폭탄을 투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북한의 방공망을 극복하는 것이 어려울뿐더러, 방공망을 뚫고 평양 상공에 도달하더라도 전투기 접근을 보고 받은 김정은과 북한 지도부는 안전 지역으로 대피해 핵공격으로부터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북한이 최근 대량으로 배치 중인 근·단거리 탄도미사일과 대구경 방사포 위협 역시 문제다. 주한미군에 전술핵무기가 재배치될 경우, 이들은 전술핵무기 배치 지역인 오산·군산·평택을 집중적으로 공격할 것이다. 기지가 무력화될 경우 전투기 이륙 자체가 불가능해 전술핵무기라는 옵션 자체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워싱턴선언 이후 언급되고 있는 전략원잠 한반도 주변 상시배치도 비현실적인 옵션이다. 잘 알려진 대로 미국은 현재 극심한 잠수함 부족 문제를 겪고 있다. 최소 66척이 필요한 공격원잠은 48척 수준에 머무르고 있고, 전략원잠 역시 극심한 노후화와 정비 지연을 겪고 있다. 지난 7월, 전략 초계 임무를 마치고 모항으로 복귀한 오하이오급 잠수함 ‘플로리다’는 무려 750일간 바다에 있었다. 교대할 잠수함이 부족해 무려 2년 넘는 임무 수행을 강요받은 것이었다. 평시 전략초계 임무조차 버거울 만큼 수중 전력이 부족한 마당에 미국이 오직 대북 억제 임무 하나 수행하자고 한반도 근해에 전략원잠을 배치할 가능성은 없다. 백악관과 국무부 등 미 행정부 당국자들이 ”전술핵 재배치는 없다“고 단언하고 있는 것은 현존 자산 가운데는 배치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술핵 재배치 옵션을 가까운 미래에 배치될 미래 자산으로까지 확대해 생각해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리고 이 옵션은 배치·운용 형태에 따라 대북 억제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은 물론, 미국 안보전략의 1순위 고려 대상인 중국을 겨냥한 게임체인저가 될 수도 있다. 바로 해상 발사 핵 순항미사일(SLCM-N)이다.
트럼프 행정부 때 착수된 SLCM-N 개발 사업은 바이든 대통령 집권 직후 전방위적으로 실시된 ‘트럼프 지우기’ 정책의 일환으로 강력한 폐기 압력을 받았던 사업이다. 그러나 합참의장·전략사령관·해군참모총장 등 군 수뇌부는 이 사업의 존속을 요구했고, 의회 역시 국방수권법(NDAA)을 통해 사업을 유지시켰다. 이 사업은 대중적으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2022~2024년 각 회계연도 국방수권법, 미 의회조사국 보고서와 국가핵안보국 의회보고서, 미 해군 해상시스템사령부(NAVSAE) 계약공고 등 다수의 문건에서 그 존재가 확인되고 있다. 2024 NDAA에는 SLCM-N을 ‘주요 국방 획득 사업’로 지정해 이 미사일에 사용될 W80 Mod 4 핵탄두 개발 프로그램을 진행할 것을 명시하고 있고, 미 국방부 획득·유지담당 차관보는 의회의 해당 명령에 대해 ”2024년 3월, 해군에 SLCM-N 프로그램 사무국을 설치하라고 지시했다“고 보고했다. NAVSEA 역시 지난 7월, ”2026회계연도까지 SLCM-N 프로그램의 마일스톤 A 달성을 목표로 사업을 진행 중“이라고 보고했다. 이미 해당 사업이 진행 중이고, 미사일에 탑재하기 위한 핵탄두 개발사업도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핵탄두의 경우 오는 2030년까지 초기작전운용능력(IOC)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SLCM-N의 등장 시기는 2030년 초반이 될 것으로 보인다.
SLCM-N은 말 그대로 해상에서 발사되는 미사일이기 때문에 현재 해군 수상함·잠수함의 표준 미사일 발사 시스템인 Mk.41에서 운용될 수 있는 규격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바꿔 말하면 이는 미 육군이 최근 배치를 시작한 ‘MRC’에서도 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MRC는 Mk.41 발사기 4셀을 하나로 묶어 40피트 표준규격 컨테이너에 수납한 이동식 미사일 발사기 4대로 구성되는 이동식 미사일 포대다. 표준 규격 컨테이너에 수납되기 때문에 군 수송기는 물론 민간 화물기, 화물선으로도 실어 나를 수 있고, 트레일러에 실려 육상 어디든 이동할 수 있다. 도색을 바꾸는 등 위장할 경우 일반 화물 컨테이너와 분간할 수 없어 생존성도 뛰어나다.
SLCM-N은 같은 핵탄두를 사용하는 공군의 AGM-181A LRSO와 유사한 설계로 만들어질 것이다. LRSO는 JASSM·LRASM·JSM 등 첨단 미사일 개발을 통해 축적된 스텔스 설계가 적용됐는데, 같은 기술이 사용될 SLCM-N 역시 높은 은밀성과 생존성을 가질 것이다. 일반 화물 컨테이너와 구분할 수 없는 외형을 가진 핵미사일 발사기에서 레이더에 탐지되지 않는 스텔스 핵미사일이 발사된다면 이는 북한은 물론 중국 입장에서도 엄청난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한국은 바로 이러한 자산의 주한미군 재배치를 이끌어 북한·중국에 최대 압박을 가함으로써 강력한 억제력을 갖는 데 외교안보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SLCM-N은 해상에서 발사하는 무기다. 그러나 잘 알려진 것처럼 미국은 존스법이라는 희대의 악법과 이로 인한 미국 내 조선산업 인프라 낙후, 예산 부족과 공급망 문제 등으로 인해 잠수함은 물론 수상함 전력도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미 해군 수상전투함 가운데 SLCM-N 투발이 가능한 알레이버크급 이지스 구축함은 전체 73척 중 42척이 태평양함대에 배치돼 있지만, 7함대에는 고작 10척이 상시 배치돼 있고, 대다수 전력이 미 서부 해안과 하와이, 괌 미사일 방어 임무에 묶여 있어 한반도 주변 상시 배치가 어렵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잠수함도 극심한 전력 부족을 겪고 있기 때문에 한반도 주변에 상시 배치할 전력을 따로 빼내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한국은 바로 이러한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협상 전략을 짜야 한다.
미국은 태평양육군에 최소 3개의 다영역임무부대(MDTF)를 배치할 계획을 가지고 있고, 각 MDTF는 1개 포대 규모의 MRC를 예하에 두고 있다. 이 MRC에 SLCM-N 운용 능력을 부여하고, 주한미군에 배치한다면 이 전력은 북한에는 ‘방어 불가’, 중국에는 ‘방어 곤란’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이는 ‘북핵 위협 억제’라는 한국의 전략적 이익에 부합하고, 중국과의 패권 경쟁을 진행 중인 미국에도 엄청난 전략적 어드밴티지를 제공한다.
한국은 미국의 SLCM-N 사업이 조속히 추진될 수 있도록 행정부를 설득하고, 필요하다면 예산 일부를 분담하고 핵협의그룹을 통해 사업 진행과 운영에 일정 부분 발언권을 얻어낼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어쩌면 SLCM-N 주한미군 재배치는 이미 수습이 어려울 정도로 커진 북한의 핵위협을 효과적으로 억제하고, 대만 침공을 시작으로 3차 세계 대전도 불사할 태세로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중국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카드가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