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군이 남중국해에서 순찰 중이던 필리핀 항공기를 미사일 회피용 섬광탄으로 위협했다는 주장이 또 나왔다. 이달 들어 벌써 세 번째다. 미국이 가세해 중국의 도발을 비난하고, 중국은 필리핀에 책임을 돌리면서 남중국해 영유권 갈등 불씨가 상공으로까지 옮겨붙는 모양새다.
25일 필리핀 국방부, 해안경비대 등에 따르면 필리핀 정부 태스크포스는 전날 성명을 내고 중국 전투기가 최근 두 차례에 걸쳐 남중국해를 순찰하던 자국 수산청 소속 경비행기에 섬광탄을 발사했다고 밝혔다.
첫 충돌은 지난 19일 중국과 필리핀 간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이 자주 발생하는 스플래틀리 군도 스카버러 암초(중국명 난사군도 황옌다오) 인근 상공에서 일어났다. 당시 중국 전투기 한 대가 자국 비행기 15m 거리까지 접근했고, 수차례 섬광탄을 쐈다는 게 필리핀 정부 설명이다.
사흘 뒤인 22일에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같은 필리핀 항공기가 ‘수비 암초’(중국명 주비자오) 근처를 비행하자, 암초 내 중국군 기지에서 섬광탄을 쏘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2014년부터 스플래틀리 군도 산호초 기반 암초 7곳에 인공섬을 만든 뒤, 이곳에 비행장과 미사일 발사대, 항공기 격납고, 레이더 시스템 등을 포함한 군사 시설을 집중시키고 있다. 수비 암초는 이들 중 하나다.
필리핀 정부는 “수산청 경비행기는 필리핀 배타적경제수역(EEZ)과 영해를 잠식하는 불법 조업 어선을 감시 중이었는데 중국이 무책임하고 위험한 기동을 했다”며 “중국의 행위는 필리핀 항공기 탑승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의도로 보였다”고 비난했다.
미국까지 ‘중국 비판’에 가세했다. 메리케이 칼슨 주필리핀 미국 대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에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합법적으로 운항하는 필리핀 항공기에 섬광탄을 발사한 것에 대해 필리핀과 확고히 협력해 비난한다”고 적었다. 이어 “중국에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을 훼손하는 자극적이고 위험한 행동을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중국은 ‘정당한 대응’이라고 반박했다. 중국 외교부는 “필리핀 군용기가 수비 암초 상공에 들어왔고, 중국 주권과 안보를 수호하기 위해 법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고 주장했다. 다만 19일 스카버러 암초 상공에서 벌어진 상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남중국해 하늘을 둘러싼 중국과 필리핀 간 신경전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8일에도 중국 전투기가 스카버러 암초 상공을 순찰하던 필리핀 공군 비행기를 향해 섬광탄을 발사하면서 양측 신경전이 격화했다. 당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도 “불합리하고 불법이며 무모한 행위”라고 중국을 규탄했다. 이에 남중국해를 담당하는 중국 인민해방군 남부전구사령부는 “필리핀이 중국의 영유권 지역에 불법 진입해 전투 훈련 활동을 방해했다”고 맞받았다. AP통신은 “남중국해를 둘러싼 중국과 필리핀의 분쟁·충돌이 해역에서 상공까지 확산되고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