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 안 받아도 직권남용?… 김명수 기소 여부, 법리 검토만 남았다

입력
2024.08.2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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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김 전 대법원장 피의자 조사
'거짓 답변'은 무혐의 가능성 낮아
직권남용 적용엔 법조계 의견 분분

국회에서 탄핵소추 논의가 진행되는 판사의 사표를 부당하게 반려한 의혹을 받아온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검찰 소환 조사를 받았다. '사법농단 의혹'으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이후 검찰에 불려온 두 번째 전직 사법부 수장이다. 사실 관계를 다 파악한 검찰은 법리 검토를 거쳐 조만간 김 전 대법원장의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김승호)는 직권남용 및 허위공문서 작성 및 동 행사 혐의로 김 전 대법원장을 23일 비공개 소환조사했다. 의혹은 그가 대법원장이었던 2021년 2월 불거졌다. 임성근 당시 부산고법 부장판사가 사표를 제출했으나, 김 전 대법원장이 국회에서 탄핵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이유로 이를 반려했다는 게 의혹의 골자다. 김 전 대법원장은 "그런 말을 한 사실이 없다"는 취지의 답변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임 전 부장판사는 김 전 대법원장 면담 당시 대화 내용을 녹음했고, 이 녹취가 공개되면서 김 전 대법원장의 거짓말 정황이 드러났다. 2020년 5월 22일자 녹취록을 보면 김 전 대법원장은 "(정치권에서)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를 수리했다고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며 임 전 부장판사의 사표를 말렸다.

일단 김 전 대법원장이 국회에 거짓 답변서를 제출한 부분은 무혐의 처분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미 공개된 면담 녹취만으로도 국회에 제출한 답변서가 허위라는 점이 넉넉히 인정된다는 얘기다. 그 역시 "불분명한 기억에 의존해 다르게 답변했다"며 범행의 고의에 대해서만 다투고 있다.

다만 사표 반려가 직권남용에 해당할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처럼 임기가 남아 있는 공공기관장을 압박해 사표를 받아낸 경우에는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한 사례가 있지만, 이번 사건처럼 사표를 반려한 경우에는 처벌된 전례가 없다. 사직 강요에 비해 사직 만류는 피해자의 불이익도 명확하지 않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도 "직권남용 법리를 지나치게 확장해선 안 된다"거나 "사표 반려는 임명권자 재량으로 남겨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검찰이 법리 검토를 오래 거친 것도 이런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 핵심 쟁점은 국회의 탄핵소추 절차를 염두에 둔 김 전 대법원장의 사표 반려를 정당한 권한 행사로 평가할 수 있는지다. 대법원 판례를 살펴보면 직권 행사가 '남용'에 해당하는지 평가할 때 ①부당한 목적이 있었는지 ②법령상의 요건을 충족했는지를 꼼꼼히 따져왔다.

김 전 대법원장이 2020년 당시 사표를 수리했다면 국회 탄핵소추 대상이 되지 않았을 것인데, 사의를 만류함에 따라 2021년 2월 국회는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임 전 부장판사의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이 탄핵 청구는 그해 10월 헌법재판소에서 각하됐다. 이 사정을 감안해 사표 반려가 당시 여당(민주당)의 비판을 피할 목적으로 이뤄졌다고 판단되면 직권남용으로 볼 여지도 있다.

사표 반려가 법원 내부 절차에 따른 적절한 직권 행사였는지도 고려해야 한다. 대법원 예규는 법관 의원면직 제한 요건을 △법원 감사담당 부서에서 감사가 진행 중인 경우 △징계위원회에 징계청구가 된 경우 △검찰 등 수사기관에서 수사를 통보한 경우로 정하고 있다. 당시 임 전 부장판사는 이미 견책 징계를 받고, 검찰에 기소돼 1심 판결을 받은 상황이었다.

검찰은 이런 법리 검토를 모두 마친 뒤 김 전 대법원장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13일 퇴임식이 예정된 이원석 검찰총장이 후임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임기 내 처리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동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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