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미국 대선이 유례없는 '젠더 전쟁'으로 치러질 전망이다. '강인한 남성성'을 앞세운 전직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와 '재생산권'(출산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 옹호자인 현 부통령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가 격돌함에 따라, 30세 미만 'Z세대' 유권자 내에서 성별 간 의견이 현격하게 벌어졌기 때문이다. 한국의 '이대남 현상'이 미국에서도 유사하게 재현되는 형국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24일(현지시간) "급격히 변화하는 성 역할로 인해 사회·경제적으로 뒤처졌다고 느낀 젊은 남성들의 트럼프 지지 경향이 훨씬 세졌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올해 대선에 대해 "(사실상) '성 역할'에 대한 국민투표가 됐고, Z세대 유권자는 나이 든 세대에 비해 남성과 여성 간 의견 차이가 가장 크다"고 짚었다.
6개 경합주에서 이달 실시된 NYT-시에나대 공동 여론조사에 따르면, 18~29세 남성 유권자의 지지율은 트럼프가 13%포인트 차로 앞섰다. 반대로 같은 연령대 여성 유권자 내에서는 해리스가 38%포인트 차로 우세했다. 성별 격차가 무려 51%포인트나 되는 셈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민주당 후보였던 시절(39%포인트)보다 훨씬 더 벌어졌다.
특히 '소외감'을 느끼는 Z세대 남성 유권자일수록 트럼프에게 기울 가능성이 더 컸다. NYT는 △저학력 △유색 인종에 해당하는 Z세대 남성의 '트럼프 지지' 경향이 뚜렷할 것으로 분석했다. 미국 보수 싱크탱크 미국기업연구소(AEI)의 대니얼 콕스 미국생활조사센터 소장은 "젊은 남성들은 경제적·정치적으로 소외돼 있고, 문화적으로도 관심을 못 받고 있다"며 "트럼프가 발산하는 거침없는 남성다움에 끌리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유사한 현상은 일찌감치 한국에서도 나타났다. 2021년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지상파 출구조사 결과, 20대 이하 유권자는 성별에 따라 극단적으로 엇갈린 정치 성향을 드러냈다. 특히 남성 유권자 72.5%가 보수 후보를 선택, 노년층보다도 더 보수적인 모습을 보여 '이대남 현상'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1년 뒤 20대 대선에서도 이런 경향은 이어졌다.
미국의 Z세대 남성 유권자는 왜 '보수'에 매료된 것일까. 그 배경에는 '전통적 남성성의 쇠퇴'가 야기한 불안이 자리해 있다는 분석이 많다. NYT 보도를 보면 트럼프를 지지하는 젊은 청년들은 "남자가 되는 게 더 어려워졌다"고 입을 모았다. 남성 가장이 오롯이 가족을 경제적으로 책임지는 '생계 부양자 모델'이 불가능해졌다는 얘기였다.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이 사회 진출을 더 많이 하면서 남성은 성 역할의 혼란과 좌절을 동시에 겪고 있다는 게 NYT의 분석이다.
트럼프 캠프는 이런 빈틈을 재빠르게 공략해 '전통적 남성성 강화'를 전략으로 삼았다. 트럼프는 지난달 펜실베이니아주(州) 유세 도중 총상을 입고도 주먹을 불끈 쥐며 '강인한 지도자' 면모를 과시했다. 그의 러닝메이트 JD 밴스 의원도 가부장적 가족, 자녀 양육 등 전통적 가치관을 강조한다. 프로레슬링 선수 헐크 호건이나 데이나 화이트 UFC 최고경영자(CEO) 등 전통적 남성성을 지닌 '근육질 연사'가 지난달 공화당 전당대회에 오른 것은 상징적 장면이다.
반면 민주당의 남자들은 '대안적 남성성'을 몸소 증명하고 있다. 트럼프나 밴스와 달리, 해리스의 남편 더글러스 엠호프는 부인의 정치적 성장을 위해 내조하는 2인자를 자처한다. 부통령 후보 팀 월즈 미네소타주 주지사도 강인함보다는 부드러움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미국 온라인매체 액시오스는 이번 대선에 대해 "'남성 대 여성' 구도만큼이나 '두 개의 남성성'이 충돌하는 선거"라며 "남성성 문제에 대한 분열은 2024년 이후 더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