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 편 뚝딱'…교토국제고 대패시킨 선수가 우승 감독 된 사연

입력
2024.08.23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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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부임한 고마키 노리쓰구 감독
25년 전 교토국제고 0-34로 패배시켜
"아저씨에게 멋진 여름방학 선사 고맙다"

재일 한국계 민족학교인 교토국제고 야구부를 20년 가까이 이끌며 23일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여름 고시엔) 우승까지 이뤄낸 주역인 고마키 노리쓰구 감독의 영화 같은 사연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23일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교토국제고는 1999년 야구부 창설 이후 처음 출전한 교토 지역 대회에서 5회 만에 34점을 내주며 0-34로 패배했다. 당시 상대 팀은 교토의 야구 명문인 세이쇼고등학교. 고마키 감독은 이 학교의 2루수로 출전해 승리에 기여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야구를 하던 고마키 감독은 잦은 부상 탓에 결국 프로 야구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접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은행원이 된 고마키 감독에게 2006년 교토국제고 수석 코치였던 지인이 "주말만이라도 와달라"며 도움을 요청했다.

주말 연습을 돕던 고마키 감독은 2007년 직장을 그만두고 교토국제고 정식 코치로 부임, 이듬해 감독이 됐다. 그 길로 17년째 교토국제고를 맡고 있다. 고마키 감독은 "처음엔 잠깐만 하려고 했지만 '내년에도 교토국제고에서 뛰고 싶습니다'라고 말해주는 제자들이 있어 그만둘 수 없게 돼버렸다"고 밝혔다.

고마키 감독은 학생들에게 수비 등 기본기를 철저히 연습시킨다. 이 덕분에 투수는 굳이 삼진을 잡지 않아도 범타를 유도해 아웃을 얻어낼 수 있다. 이런 훈련 방식과 관련, 고마키 감독은 3년 전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좁은 운동장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외야 훈련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운동장이 좁다 보니 연습 경기를 하려면 외부 연습장을 빌려야 하므로 자연스럽게 기본기 훈련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열악한 환경을 탓하지 않고 학생들과 힘껏 노력한 결과 우승까지 이뤄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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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여름방학 선사해줘 고맙다"

고마키 감독의 지도 아래 교토국제고는 2021년 봄 고시엔에서 처음으로 전국 무대에 올랐고, 같은 해 여름 4강까지 진출했다. 그리고 제106회 여름 고시엔이 열린 올해 첫 우승을 차지했다. 교토국제고의 탄탄한 내야 수비는 이번 고시엔에서도 빛났다.

고마키 감독은 우승 직후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회 전에 아이들에게 '가능한 한 오래 너희와 야구를 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정말 여기까지 오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며 "이런 아저씨에게 멋진 여름방학을 선사해준 아이들에게 정말 고맙다"고 감격했다.

고마키 감독의 사연을 접한 국내 누리꾼들은 "상대 팀 1학년 선수가 우승 감독이 되다니 영화가 따로 없다", "드라마로 만들어주면 꼭 보겠다"고 호응했다.

교토국제고는 이날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시의 고시엔구장에서 펼쳐진 대회 결승전에서 도쿄도 대표인 간토다이이치고를 2-1로 이기고 우승을 차지했다. 9회까지 0-0 동점을 유지하던 교토국제고는 10회 초 연장 승부치기에서 2점을 먼저 내고 이어진 수비에서 무사 만루 위기에 1점을 내주는 데 그쳐 승리했다.



장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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