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 소재 아파트 단지에서 이웃에게 일본도를 휘둘러 사망하게 한 혐의를 받는 30대 남성이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이번 범행을 망상에 의한 이상동기 범죄로 보면서도, 철저하게 계획된 점으로 미뤄볼 때 심신미약으로 볼 수 없다는 수사 결과를 내놨다.
서울서부지검 형사3부(부장 김은하)는 지난달 29일 오후 11시 27분쯤 은평구 응암동 아파트 인근에서 칼날 길이 75㎝의 일본도를 약 10회 휘둘러 같은 아파트 주민 김모(43)씨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피의자 백모(37)씨를 살인 및 총포화약법 위반죄로 23일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백씨는 재직 중이던 회사를 약 3년 전 퇴사한 뒤 별다른 사회·경제적 활동 없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이때 대기업에 취직하겠다며 정치와 경제 기사를 몰아 읽었는데, 지난해 10월부터 '중국 스파이가 대한민국에 전쟁을 일으키려 한다'는 망상에 빠진 사실이 그가 작성해온 2,000쪽 분량의 일지 등에서 확인됐다.
백씨의 망상은 급기야 주변인들이 중국에서 보낸 스파이고,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고 여기는 수준까지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 뿐, 친분이 없었던 피해자 김씨가 표적이 됐다.
검찰은 백씨의 범행은 망상에 따른 이상동기 범죄지만, 치밀하게 계획된 측면이 명확하다고 판단했다. 백씨는 일본도를 더 잘 사용하기 위해 연습용 목검을 추가로 구매하거나, 장검을 소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골프백에 넣고 다녔다. 범행 전 '일본도' '용무늬검·검도검·장검' '살인사건' 등을 검색해본 행적도 드러났다. 또 올해 1월 살상 용도로 일본도를 구입하면서도 소지 허가를 받기 위해 '장식용'으로 허위 신청하기도 했다. 수사 과정에서 이 사실이 드러나 총포화약법 위반 혐의가 추가됐다.
검찰 관계자는 "망상이 범행 동기로 작용했을 뿐 백씨는 자신의 행위의 내용과 결과, 이에 따른 책임을 판단할 수 있어 심신미약으로 보긴 어렵다"며 "재범 위험성이 매우 높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명령도 함께 청구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