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서 출근길 투쟁한 전장연 "미안하다고 하니 괜찮다더라"

입력
2024.08.23 15:12
파리 패럴림픽 계기 유럽 지하철 투쟁 
"오세훈 시장, 장애인 인권 약탈 알려야"
독일 시민 "서울에서 무슨 일 일어나나"

"'미안하다'고 하니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차분하게 지켜보고 들어줬어요. 장애인에게 관심을 갖는 농도가, 우리의 시위를 대하는 분위기가 (한국과는) 달랐던 것 같아요."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22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진행한 '지하철 출근길 투쟁'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전장연은 장애인 이동권 확보 등을 요구하며 2021년 12월부터 서울을 주무대로 인파가 많은 출근길에 지하철역 안팎에서 간헐적 시위를 벌여왔다. 그러나 장애인 이동권이 확보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는커녕 시민들의 시선이 계속 싸늘해지고 정치권마저 이들을 외면하는 한국과는 달리, 독일에서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의지를 느꼈다는 것이다. 이들의 시위는 독일어로 진행됐다.

시위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에 국한한 이야기는 아니다. 박철균 전장연 조직국장은 "승강장에 비해 열차가 높아서 시설 면에서는 조금 불편했다"면서도 "기관사가 우리의 탑승을 돕기 위해 열차에서 내리고 (그가 우리를 돕는 동안) 열차가 한참 멈춰 있어도 시민들이 기다려주는 점 등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사실 이들이 베를린에 온 '진짜 목적'은 이달 28일 프랑스 파리에서 개막하는 패럴림픽을 계기로 '오세훈 서울시장과 윤석열 대통령이 장애인 인권을 후퇴시키고 있다'는 점을 유럽(노르웨이·독일·프랑스)에 알리기 위함이다. 특히 전장연은 오 시장이 이동권 확보를 위한 집회·시위 자유를 탄압하고 있으며, 공공일자리인 권리중심노동자 중증장애인 400명을 해고하는 등 노동권을 박탈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목소리는 베를린 랜드마크인 브란덴부르크문 앞 광장에서도 퍼졌다. 박경석 대표는 영어 연설을 통해 "장애를 가진 사람도 교육을 받고 싶고, (비장애인과) 함께 일하고 싶고, 감옥 같은 시설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고 싶다"며 "시민으로서 살 수 있는 권리를 위해 모두 함께 싸워 달라"고 외쳤다. 독일 분단 역사를 상기하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갈라치는 오 시장을 막아달라"고도 했다. 이들은 장애인이 권리 확보를 위해 분투하는 현실을 보여준다는 의미를 담아 거리에 눕는 퍼포먼스도 진행했다.

이들의 집회는 많은 베를린 시민의 관심을 끌었다.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촬영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한 독일 시민은 "서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하다"며 "모든 인간이 같은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면서 당연한 사안이기에 이들의 목소리가 현수막에 새겨진 인물(오세훈 시장)에게 닿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장연은 베를린 거리 곳곳에 오세훈 시장의 얼굴과 함께 "오 시장이 장애인 권리를 박탈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긴 스티커를 붙였다. "장애인 인권을 착취하는 서울시는 2036년 하계올림픽을 유치할 자격이 없다"는 내용의 유인물도 독일 시민들에게 배포했다.

이들은 베를린에 22~25일 머무른다. 이중 48시간은 주독일 대한민국대사관 앞에서 철야 농성을 한다. 철거 위기에 놓인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존치 요구 집회에도 나설 예정이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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