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기간, 침수된 포스코 포항제철소 전기시설 복구작업. 일당 125만 원.’
태풍 힌남노가 전국을 강타했던 2022년 9월, 파격적인 구인광고가 올라왔다. 글을 올린 건 포스코 전기시설 분야 협력업체들로 구성된 경북 포항 전문건설전기협의회(이하 전기협의회) 진명주(63·사진) 회장. 전기설비를 복구해야 침수된 공장의 진흙을 퍼내는 모터 등을 가동할 수 있어 한시가 급했던 것. 그의 스마트폰은 지원자들 전화로 불이 났다. 사기나 12만5,000원의 오기가 아닌지 확인하는 문의도 빗발쳤다. 삽시간에 전국에서 전기기술자 700여 명을 모았다. 이들이 연휴 5일간 부지런히 작업한 덕에 여의도 면적 3배 이상 크기인 포항제철소는 다음 단계 작업을 순탄하게 진행했다.
포항제철소 복구에 큰 공을 세웠던 진 회장이 또 한 번 전기기술자 모집에 나섰다. 이번에는 공장 완공 단계에서 각종 장비의 전선을 연결하는 결선공 양성에 팔을 걷었다. 한 달 700만 원은 거뜬히 벌 수 있는 일자리인데도, 돈 한 푼 받지 않고 교육장을 열었다. 수강생은 오랜 시간 경력단절을 경험한 40, 50대 주부로 제한했다. 남성 결선공은 전국 각지를 전전하며 일감을 찾을 수 있지만, 여성들은 가정을 돌봐야 해 일이 없다고 포항을 떠날 수 없어서다. 진 회장은 “결선 작업은 큰 공장을 지었을 때 장비가 들어오는 마지막 단계에 일이 몰린다”며 “일시적으로 많은 인력이 필요해 불시에도 사람을 모을 수 있는 포항지역 주부들이 교육받도록 했다”고 말했다.
강의실은 전기협의회 한쪽 회의실에 마련했다. 양쪽 벽면에 가로 약 60㎝, 세로 약 120㎝의 전선 연결패널을 1m 간격으로 줄줄이 붙여 실습장으로 꾸몄다. 강사는 21개 회원사 대표. 수강생들은 포항철강공단의 건설 근로자들로 결성된 한국노총 플랜트건설노동조합을 통해 뽑았다. 강의는 수강생과 회사 대표들의 사정을 고려해 평일 오후 6시부터 2시간가량 진행됐다. 교육생들에게는 매일 저녁식사도 제공했다.
포스코도 힘을 보탰다. 실습용 전선 6,000m(시가 6,000만 원 상당)를 기탁한 것. 무려 2,000번 이상 연결해 볼 수 있는 분량이었다. 진 회장은 “전선을 충분히 구하지 못해 곤란했는데 포스코 덕분에 교육생들이 걱정 없이 기술을 익혔다”고 말했다.
전기협의회는 지난 4개월간 두 달 간격으로 결선공 총 25명을 배출했다. 현장에 투입된 이들은 한 달간 열심히 전선을 이어 600만~700만 원의 두둑한 임금을 받자 눈빛이 달라졌다. 입소문이 나면서 진 회장의 휴대전화는 2년 전처럼 또 불이 났다. 주로 '교육을 언제 재개하는지'를 묻는 전화였다.
기대와 달리 결선공 양성 교육은 잠시 멈췄다. 최근 경기 침체로 일자리가 많지 않은 점도 강의를 재개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그는 “2년 전 포항제철소 복구 때 125만 원의 높은 임금을 제시한 이유는 추석 연휴에 고숙련 전기기술자가 필요했기 때문”이라며 “월 700만 원 받는 결선공도 매달 그렇게 많이 벌 수는 없다”고 말했다.
진 회장은 그러나 저출산 고령화로 산업현장마다 기술 인력을 구하기 어려워 조만간 교육을 재개할 예정이다. 또 결선공뿐 아니라 다양한 기술 분야로 확대할 계획이다. “경력단절 주부들을 가르쳐 보니 남성보다 섬세하고 배려심이 깊은 데다 현장에 빨리 적응하는 등 장점이 많았어요. 포항시도 교육 소식을 듣고 '일자리 확대에 도움이 된다'며 예산 지원에 나섰죠. 갈수록 부족해지는 기술 인력을 확보하고, 경력단절 여성에게 재취업의 기회를 제공하도록 열심히 이끌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