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공 테이프 감아 쓰던 교토국제고 '고시엔 결승 기적'엔 KIA 응원 있었다

입력
2024.08.22 19:00
"열악한 연습 환경에 공인구 전달"
학교 측 "낡은 공 재사용해왔다" 화답
열악한 환경에도 고시엔 결승 진출
심재학 단장 "앞으로도 지원 계속"
23일 첫 우승 도전, 日전역 생중계

올해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 본선 대회(여름 고시엔(甲子園)) 결승에 첫 진출해 파란을 일으킨 한국계 학교 '교토국제고'가 프로야구 KIA타이거즈가 기부한 야구공으로 연습했던 사연이 뒤늦게 확인됐다.

KIA타이거즈는 지난 3월 당시 일본 고치현에 차린 2군 스프링캠프에서 쓰던 프로야구 공인구 1,000개를 교토국제고에 전달했다고 22일 밝혔다. 심재학 KIA단장은 이날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프로 팀 교류차 갔던 일본 오사카 출장길에서 교토국제고 출신 재일동포분을 만났고, 모교 야구부의 연습 환경이 열악하단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심 단장은 "제일 부족한 게 야구공이라고 해서, 마침 고치에 있는 2군 스프링캠프의 야구공 1,000개를 보내드렸다"고 밝혔다.

이에 박경수 당시 교토국제고 교장은 곧바로 구단에 감사 편지를 보냈다. 박 교장은 "(우리에게) 야구공은 매우 귀중하여 야구부원들은 항상 낡은 야구공에 비닐 테이프를 감으면서 재사용하고 있었다"며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기부받은 공은 부원들 연습에 의미 있게 쓰겠다"며 "고시엔에서 활약할 교토국제고 야구부의 멋진 모습을 기대해 달라"고 화답했다.

교토국제고 야구부는 최근 수년간 약진해 긴키 지역의 야구 명문고가 됐지만 환경은 다른 학교에 비해 극히 열악하다. 야구공을 비롯한 장비 부족이 심각한 것은 물론이고 운동장이 좁아 외야 연습을 하려면 다른 연습장을 빌려야 했다. 고시엔 출전 비용도 일본 각지의 재일동포들이 기부금을 모아 마련한다. 이런 환경에서 고교 야구부만 4,000여 개가 있는 일본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고시엔 결승에 진출한 것은 사실상 '기적'이나 다름없다.

"좋은 취지 공감...계속 돕겠다"

앞으로도 교토국제고에 대한 지원을 이어갈 것이냐는 질문에 심 단장은 "그럼요"라고 즉답했다. 그러면서 "구단에서도 좋은 취지에 공감하고 있다. (교토국제고에) 기본적인 야구 장비들이 부족하다고 해 도움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1947년 교토조선중학으로 개교한 재일 한국계 학교인 교토국제고는 재일동포 학생 수가 급감하자 2004년 일본 정부 승인을 받은 국제학교가 됐다. 지금은 한국 교육부와 일본 문부성 양측에서 지원받는다. 학생의 절반 이상이 일본인이고 야구부는 대부분 일본인 학생이다. 그러나 한국어나 한국 역사, 재일동포 역사 수업을 하는 등 민족 교육도 지속하고 있다.

학생 수 급감에 따른 '학교 살리기'의 일환으로 1999년 야구부를 창단했다. 첫 연습 경기 때 58대0으로 진 약체였지만 고마키 노리쓰구(38) 감독이 2008년 부임한 뒤 차근차근 실력을 키웠다. 2018년 교토부 고교대회 준우승에 이어, 2020년 오사카와 교토부를 포함한 긴키 지역 고교대회 4강에 올랐다. 이에 따라 2021년 일본 효고현 한신고시엔구장에서 열리는 전국고교야구선수권 본선 대회에 첫 진출해 4강까지 올랐다.

2022년엔 1회전 탈락, 2023년 본선행에 실패한 교토국제고는 올해 본선에선 1회전부터 준결승까지 5차례 경기를 내리 이기며 학교 사상 첫 고시엔 결승까지 올랐다. 23일엔 간토다이이치고교와 우승기를 놓고 맞붙는다. 고시엔 전 경기는 관례에 따라 일본 NHK로 생중계된다. 만약 우승을 쟁취하면 또다시 '동해 바다 건너 야마토 땅은~'으로 시작되는 한국어 교가가 일본 전역에 울려 퍼지게 된다.


윤현종 기자
박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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