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게도 글로벌 경쟁시대

입력
2024.08.23 16:30
18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서해안 청해(靑蟹)를 임금에게 진상하는 게 상례였고, 이를 제대로 하지 않아 벌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청해는 임진강 하구 등에서 많이 잡히는 참게다. 정조 때 정약전의 자산어보에 나오는 시해(矢蟹)가 꽃게라고 한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에는 꽃게에 대한 내용이 보이지 않는다. 수심 30m 바닥에 살다 보니 당시 어업 기술상 제대로 잡지 못한 탓이 아닐까 싶다. 어쨌거나 다양한 게요리를 자랑하는 우리 민족 입맛은 진심이다.

□ 아프리카 세네갈산에 이어 이탈리아산 푸른 꽃게가 지난해부터 국내 수입돼 우리 식탁에 오른 경위가 이채롭다. 수온 변화로 푸른 꽃게가 이탈리아 연안으로 몰려와 포획 포상금까지 내걸 정도였다. 이탈리아 요리의 정수인 봉골레 파스타 원료인 조개 천적인 탓이다. 정작 게를 먹지 않아 푸른 꽃게를 잡아서 버리는 게 일인데, 이런 소동이 우리 수입업자 눈에 띈 것이다. 기후변화 탓에 우리 꽃게가 식탁 위의 라이벌을 만나게 된 셈이다.

□ 세네갈이나 이탈리아 푸른 꽃게가 식감에서 우리 꽃게와 크게 뒤지지 않는 모양이다. 단맛과 감칠맛이 좋다고 한다. 우리 꽃게보다 조금 작은 편이지만 간장게장이나 찌개, 찜, 젓갈용으로 손색없다는 반응이다. 수입 과정에 물류와 냉동 비용이 만만치 않겠지만 원재료 값이 덜 들어 우리 꽃게 대비 가격 경쟁력도 있는 듯하다. 지난 20일 꽃게 금어기가 끝나자마자 대형 유통업체들이 저마다 햇꽃게 할인행사를 내건 걸 보면 그렇다. 최근 5년 기준 최저가를 내건 곳도 있다.

□ 서해 북방한계선(NLL)의 긴장은 매년 봄 꽃게 성어기와 연관돼 있다. 남북은 꽃게잡이 조업을 통제하는 과정에서 영해선을 침범했네, 말았네 옥신각신하는 게 연례 행사가 되다시피했다. 민주당 정권 시절엔 NLL 완충지대를 설정했다. 여기에 우리 해경과의 충돌을 불사하는 중국어선들의 불법조업은 한중관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실정이다. 생계를 위협받는 우리 어민은 울상을 지을 수밖에 없겠으나 꽃게의 글로벌 경쟁시대에 군사적 긴장은 덜해지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정진황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