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자마자 죽을 것이라는 아기가 살았다

입력
2024.08.23 14:30
10면
과달루페 네텔 장편소설 ‘이네스는 오늘 태어날 거야’

편집자주

시집 한 권을 읽고 단 한 문장이라도 가슴에 닿으면 '성공'이라고 합니다. 흔하지 않지만 드물지도 않은 그 기분 좋은 성공을 나누려 씁니다. '생각을 여는 글귀'에서는 문학 기자의 마음을 울린 글귀를 격주로 소개합니다.

모든 신문사에서는 매주 한 차례 ‘책 면’을 제작합니다. 한국일보는 토요일 자에 실리는데요. 매일 나온다는 200권 이상의 책 가운데서 독자들과 함께 읽고 싶은 이야기를 골라 소개하려는 취지죠. 좋은 책을 보는 눈은 다 비슷한지라 각 신문사에서 다루는 책이 겹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지난주 책 면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책은 멕시코 작가 과달루페 네텔의 장편소설 ‘이네스는 오늘 태어날 거야’였습니다. 소설의 주인공 ‘라우라’와 함께 비혼·비출산을 주장하던 친구 ‘알리나’는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갖기로 합니다. 난임 시술 끝에 어렵게 찾아온 새 생명은 기쁨을 느낄 새도 없이 뇌가 자라지 않아 출생하자마자 사망할 것이라는 진단을 받습니다. 알리나는 아이에게 ‘이네스’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예고된 작별을 준비합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이네스는 “어쩌면 이 주, 어쩌면 두 달, 운이 좋다면 몇 년”을 살게 됩니다.

“알리나는 그 순간 일말의 기쁨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거부 반응 비슷한 것을 느꼈다고 기억한다.”

소설은 준비되지 않은 채로 엄마가 된 알리나와 이네스의 보모, 또 라우라와 이웃 도리스와 니콜라스 모자 등을 통해 출산과 양육의 여러 형태를 보여줍니다. 다만 그 사이에서 하나의 결론을 내리진 않습니다.

‘이네스는 오늘 태어날 거야’는 양장본과 함께 문고판이 동시에 출간된 책이기도 합니다. 크기가 작고, 얇은 종이를 쓴 문고판의 가격은 8,800원이라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책값이 비싸다’는 불만이 꾸준한데도 이상하게 저렴한 문고판은 수요가 없는 편이죠. 출판사 바람북스는 우려를 알면서도 과감히 도전에 나섰다고 하네요. ‘이네스는 오늘 태어날 거야’의 문고판으로 가볍지만 담긴 이야기는 결코 가볍지 않은 책을 한번 읽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전혼잎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