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가 썩은 아이들"... 중국 사상 최악 취업난에 '신인류' 등장

입력
2024.08.22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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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학력 백수 넘치자 '란웨이와' 신조어도 등장
구직 실패해 낙향...부모 연금에 의존하는 세대
"중국서 이제 자녀 교육은 위험한 투자" 지적

중국 허베이성 출신 차오(27)는 지난해 베이징의 한 명문대에서 석사 학위를 땄다. 높은 급여의 직장에 취업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빗나갔다. 고학력 인재가 넘치는 반면, 일자리는 부족했다. '뭐하러 공부했나' 하는 회의감이 찾아왔다. 결국 차오는 구직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최근 중국에서는 고등 교육을 받았음에도 일자리를 못 얻어 낙향했거나, 구직 자체를 포기하고 부모의 경제력에 기대 살아가는 청년을 '란웨이와(爛尾娃)'라는 신조어로 부른다. 직역하면 '꼬리가 썩은 아이'라는 말로, 좋은 교육을 받았으나 끝(꼬리)이 망가져 버렸다는 의미다. '취업 등을 포기하고 드러누운 사람'이라는 뜻인 '탕핑(躺平)족'과 비슷하지만, 란웨이와는 고학력 백수를 지칭한다는 점에서 구분된다.

'란웨이러우' 이어 '란웨이와'..."새로운 사회 계급"

비슷한 표현은 몇 년 전에도 생겼다. 중국 부동산 유동성 위기가 발발한 2020년대 초, 건설사 자금난으로 생긴 수백만 채의 미완성 아파트는 '꼬리 썩은 건물'이라는 의미인 '란웨이러우(爛尾樓)'로 불렸다. 여기서 마지막 한 글자만 바꿔, 고학력 백수를 가리키는 란웨이와라는 '신인류'가 탄생한 셈이다. 로이터통신은 21일(현지시간) "중국의 실업률 상승으로 '썩은 꼬리의 아이들'이라는 새로운 사회 계급이 생겨났다"고 전했다.

중국의 취업난은 사상 최악수준이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지난달 청년실업률(16~24세)은 전월(13.2%)보다 무려 3.9%포인트 증가한 17.1%를 기록했다.

앞서 중국 정부는 지난해 6월 청년실업률이 사상 최고치인 21.3%를 기록하자 통계 발표를 돌연 중단했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재학생 실업률을 계산에서 제외한 새 통계 방식을 적용했다. 이후 청년실업률 수치는 표면적으로나마 14%대로 잠시 낮아졌으나, 금세 17%대로 다시 상승한 것이다. 올해 대졸자(1,179만 명) 규모에 단순 적용하면, 연간 최소 200만 명의 란웨이와가 생겨나고 있는 셈이 된다. 저우윈 미국 미시간대 교수는 "과거 중국에서는 대학 졸업장이 더 나은 취업과 사회적 지위 상승을 보장했지만, 지금은 이를 기대하기 힘들어졌다"고 지적했다.

석사 학위도 소용없어..."자녀 교육은 위험한 투자"

실제 대학원을 졸업한 석사급 인재라도 취업 문을 열기는 쉽지 않다. 지난해 석사 학위 이상 소지자만 응시할 수 있는 국가통계국 1급 자리 경쟁률은 무려 3,500 대 1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같은 해 중국 국유기업인 중국석유천연가스의 '단순 행정 직원 1명 채용' 소식에 명문대 석·박사생 224명이 지원했고, 산둥대는 명문대 석사 졸업생을 기숙사 관리직원으로 채용했다는 소식은 청년들의 허탈감을 더 키웠다. 2년제였던 석사 과정을 최근 3년제로 늘리는 중국 대학교가 늘어나는 것도 실업률을 낮추려는 임시 방편으로 분석된다.

로이터는 "치열한 학문 사다리 오르기 경쟁을 해 온 '꼬리 썩은 아이들'이 중국의 암울한 경제 상황 속에선 일자리를 구할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닫고 있다"고 짚었다.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웨이보의 한 교육 분야 블로거는 "10년 이상 공부를 시켰는데 부모에게 돌아오는 것은 란웨이와였다"며 "자녀 교육은 이제 상당히 위험한 투자가 됐다"고 꼬집었다.

베이징= 조영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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