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애란이 돌아왔다. ‘아이들’과 함께. 그가 13년 만에 선보인 장편소설 ‘이중 하나는 거짓말’은 고등학교 2학년의 겨울방학을 맞이한 지우, 채운, 소리라는 세 아이의 이야기다. 김 작가는 21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번 소설을 “어찌 보면 뒤집어진 가족 소설 혹은 성장 소설”이라고 말했다. “이 소설을 쓰면서 성장의 의미를 다르게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성장이란 내가 더 자라난다는 의미가 아니라 어쩌면 ‘시점 바꾸기’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보탰습니다.”
‘이중 하나는 거짓말’은 지우, 채운, 소리가 다니는 반의 자기소개 규칙이다. 다리를 다쳐 축구를 그만두고 전학을 온 채운에게 담임 선생님은 설명한다. “다섯 문장으로 자기를 소개하면 되는데, 그중 하나에는 반드시 거짓말이 들어가야 해.” 채운의 등교 첫날 자기소개 장면을 꿈으로 꾼 소리는 다섯 개의 문장을 만든다. ①나는 어릴 때 못을 밟아 발을 다친 적이 있다. ②나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한다. ③나는 가끔 아침에 눈 뜨는 게 두렵다. ④나는 누군가의 손을 놓쳐 그 사람을 잃은 적이 있다. ⑤나는 곧 죽을 사람을 알아본다. 이 중 무엇 하나가 거짓말일까.
저마다의 상실로 인한 슬픔을 지닌 채로 자라나는 같은 반 청소년들의 이야기지만 지우, 채운, 소리는 소설의 끝까지 한자리에서 만나지 않는다. 지우는 엄마의 애인이었던 선호 아저씨에게 짐이 되기 싫어 막일 현장으로 떠난 탓에 소리와 휴대폰으로만 연락을 하고, 채운은 지우가 인터넷에 올린 웹툰을 통해 그를 마주한다. 손을 잡으면 곧 죽을 존재를 가려내는 소리의 환상성과 거짓말의 형태를 한 각자의 비밀은 실제로 접촉하지 않는 세 아이를 연결해 낸다.
지우, 채운, 소리는 시점을 바꿔 가는 사이 자기연민과 자기애의 그늘 바깥으로 걸어나갈 준비를 해나간다. 이는 김 작가가 말한 “다른 사람의 자리가, 혹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내 안으로 들어와 그 사람의 자리가 더 커지는” ‘성장’일 테다.
김 작가의 첫 장편소설인 ‘두근두근 내 인생’(2011)에 이어 ‘이중 하나는 거짓말’ 역시 가족이 주요한 소재다. '두근두근...'이 “우리가 익히 아는 가족의 의미를 바탕으로 꾸린” 가족 이야기였다면, 신작에는 “유사 가족 혹은 인간이 아니더라도 사람 못지않게 친밀감을 주는 동물들도 함께 등장시켜 봤다”고 그는 귀띔했다.
아버지 없이 홀로 자신을 키우던 어머니가 최근 자살인지 사고인지 모호한 방식으로 죽은 지우. 그는 반려 도마뱀과 선호 아저씨와 지낸다. 채운은 어떤 사건 때문에 아버지는 의식을 잃고 어머니가 교도소에 수감되면서 반려견과 이모의 집에 얹혀산다. 소리는 항암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가던 어머니가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진 이후로 아버지와 둘이 지낸다. 하나같이 한국 사회에서 이상이자 정상으로 여겨지는 ‘4인 가족’과는 먼 가정환경이다.
김 작가는 “한국은 피로 연결된 끈끈한 점성의 힘이 강한 사회였지만, 때로는 그 끈적끈적함과 점성이 건강하지 못하거나 심지어는 끔찍할 때도 있다”고 했다. 그는 “특히 폭력이 일어나는 장소로서의 가족은 남보다 못하다는 생각도 들고, 그럴 때 (가족이) 반드시 지켜야 할 미덕이나 가치인가”를 물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반려동물들, 또 피는 안 섞였지만 나를 진심으로 도와주려고 하는 어떤 아저씨 또한 이젠 가족의 이름으로 불려도 되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김애란 작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가능한가”(신형철 문학평론가)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김 작가는 한국 문단에서 남녀노소의 사랑을 받는다. 23년 차 소설가인 그가 낸 네 권의 단편 소설집(‘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비행운’ ‘바깥은 여름’)과 한 권의 장편 소설(‘두근두근 내 인생’)에는 고르고 굳건한 애정이 쏟아졌다. 이는 범속한 일상을 다시 사유하게 하는 그의 소설이 “극적인 탈출이 아닌 아주 잘고 꾸준하게 일어난 구원”을 선사해 온 덕일 테다. '이중 하나는 거짓말’에서 반려 도마뱀이 지우에게 그랬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