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항암제 최초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획득한 폐암 신약 '렉라자'가 제약·바이오 산업에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우수한 항암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해 개발 단계에 올려놓은 뒤 글로벌 제약사와 손잡고 최종 허가까지 처음 완주했다. 업계에선 신약개발 기업이 꿈꾸는 이상적인 시나리오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제 '넥스트 렉라자'에 이목이 쏠린다.
21일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는 렉라자의 FDA 승인을 일제히 환영하며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 전략의 성공 모델로 평가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국제 기준으로 볼 때 국내 산업은 규모가 작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연구개발과 혁신을 통해 신약 강국이자 세계 최대 제약·바이오시장인 미국 입성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매우 크다"고 논평했다.
유한양행은 2015년 바이오기업 오스코텍의 자회사 제노스코의 항암 물질 기술을 이전받아 2018년 얀센에 수출했다. 얀센의 모회사인 존슨앤드존슨(J&J)은 이번에 승인된 렉라자와 '리브리반트' 정맥주사 병용요법이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에 쓰이고 있는 경쟁약 '타그리소'를 빠르게 대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 타그리소의 매출은 58억 달러(약 7조7,000억 원)였고, 얀센은 렉라자의 미국 시장 매출 목표를 50억 달러(약 6조6,000억 원)로 전망했다. 이대로라면 국산 '블록버스터' 신약이 된다.
유한양행, 오스코텍, 제노스코는 계약에 따라 약 1조 원 규모의 마일스톤(기술료)을 6대 2대 2 비율로 나눠 갖는다. 아울러 글로벌 순매출액 단계별로 10~15%의 판매 로열티까지 확보할 전망이다. 유한양행은 올해 첫 연매출 2조 원 돌파가 유력하다.
높은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한 신약 하나를 성공시키기 위해 유한양행은 여러 방식으로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왔다.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으로 69개 기업 지분 투자에 총 4,408억 원을, 지아이이노베이션과 알레르기 신약, 에이비엘바이오와 면역항암제 등 기술 개발에 5,000억 원 이상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2019~23년 연구개발(R&D)에 투입한 비용도 9,000억 원이나 된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렉라자 같은 경험을 누적하고 성공 사례를 반복하기 위해서는 오픈 이노베이션은 물론 정부와 민간 펀드 등을 통한 R&D 재정 지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렉라자의 뒤를 이을 국산 신약들도 미국 임상과 허가 절차를 진행 중이다. HLB는 항암 신약 후보물질 '리보세라닙'과 항서제약의 면역항암제 '칼렐리주맙'의 병용요법으로 FDA 승인에 재도전 중이다. 이르면 연내, 늦어도 내년 중에는 최종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HK이노엔의 위식도역류질환 신약 '케이캡'은 미국에서 임상시험 3상 중인데, 연내 FDA 허가를 신청한다는 계획이다. 아리바이오의 알츠하이머 신약 후보물질은 글로벌 임상 3상 단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