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익을 해치는 자는 죽여도 좋다'는 나치즘을 고발했다 금서가 된 '이 책'

입력
2024.08.23 11:00
25면
배수아 작가의 [다시 본다, 고전2]
독일계 작가 외된 폰 호르바트
'신 없는 소년'(Jugend ohne Gott)

편집자주

어쩐지 펼쳐 보기 두려운 고전에 대해 다시 조곤조곤 얘기해 봅니다. 1993년 등단한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배수아 작가와 출판 편집 기획자 출신 강창래 작가가 한국일보에 격주로 글을 씁니다.

나는 서른네 살의 김나지움(독일의 중등 교육기관) 교사이다. 열네 살 난 소년 스물일곱 명에게 역사와 지리를 가르친다. 나는 부유하지 않고 나이 든 부모를 경제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현재의 삶에 만족하는 편이다.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극심한 불안의 시대에 종신연금이 보장되는 공립학교 교사직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나의 일상에 균열이 생기는 사건이 발생한다. 한 학생이 쓴 작문이 발단이었다. 감독관청에서 내려온 주제인 '독일은 왜 식민지를 가져야 하나?'로 쓴 작문이다. 학생 N은 이렇게 썼다. “검둥이는 모두 교활하고 비열한 데다 게으르기만 하다.”

나는 이것을 읽는 순간 당장 붉은 잉크로 삭제하고 얼마나 편협한 생각인지 지적을 해주려고 한다. 그러나 곧 마음을 고쳐먹는다. N의 이런 생각이 어디에서 왔는지 짐작하기 때문이다. 어디에서나 들려오는 라디오 소리, 그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말이기 때문이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말은 일개 교사가 함부로 삭제할 수 없다. 그 라디오를 신문은 따라서 인쇄하고, 아이들은 그것을 베껴쓴다.

그러나 다음 날 체크한 작문을 나눠 주면서 나는 결국 N에게 한마디 하고 만다. “검둥이도 사람이다.”

이런 내 행동은 예상보다 훨씬 더 큰 결과를 몰고 온다. 바로 다음 날 N의 아버지가 학교로 찾아와 자신은 ”평생 정의와 공정만을 추구해온 사람”이라면서 내 발언이 “조국에 대한 사보타주”라고 항의했던 것이다. 게다가 학생들 전체는 이 일을 계기로 교사를 교체해달라는 요구서에 서명까지 했다. 나는 교장으로부터 “교육의 의무는 소년들에게 전쟁에 적합한 모럴을 키워주는 것”이라는 경고를 받는다.

부활절 휴가 동안 산 속에서 열리는 군사훈련 캠프로 학생들을 인솔해 간 나는 우연히 산 속 동굴에 어린 좀도둑 패거리가 있음을 알게 되고, 캠프에서는 물건이 사라지는 사고가 생긴다. 나는 도둑 패거리의 대장 격인 소녀와 밤에 보초를 서던 학생 Z가 사랑에 빠진 것을 목격한다. Z는 밤마다 일기를 쓰기 때문에 전등을 켜 놓는 문제로 같은 텐트에 있는 N과 자주 싸움을 벌이곤 했다. Z의 일기에 소녀와 도둑 패거리에 대한 비밀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나는 학생들이 군사 훈련을 나간 사이 Z의 텐트에서 그가 일기장을 숨겨 놓은 상자의 자물쇠를 열고 일기를 읽었다. “N은 내 상자를 부숴버리겠다고 지껄인다. 그러기만 해보라지. 내 상자에 손 대는 자는 그 누구라도 죽음뿐이다! 라고 일기장에 적혀 있었다. 나는 서둘러 상자를 다시 잠그려고 하다가 그만 자물쇠를 부숴뜨리고 만다.

다음 날 산에서 N이 행방불명되었고 결국 시체로 발견된다. 뒷머리를 돌로 가격당하고 죽은 것이다.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Z가 혐의를 받고, Z의 일기장은 압수당하고 동굴에 살던 소녀도 절도 혐의로 체포된다. 일련의 사건들이 터지면서 나는 Z의 상자를 부수고 일기를 읽었다는 고백을 할 기회를 놓치고 만다. Z는 자신이 N을 죽였다고 자백한다. 상자를 부수고 일기를 읽었기 때문에 용서할 수가 없었노라고, 하지만 자세한 행위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Z의 변호사는 Z의 자백이 다른 누군가를 보호하려는 거짓 자백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누군가는 아마도 N을 죽인 진짜 살인범인데, 그것은 Z가 사랑하고 있는 도둑 소녀라고.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하던 나는 증인으로 나선 법정에서 N이 아니라 교사인 나 자신이 상자를 부수고 일기를 훔쳐 읽은 장본인임을 밝힌다. 쉽지 않은 고백이었다. 그로 인해 나는 교사직을 잃는다. 안전한 미래도 약속된 연금도 모두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렸다. 이전의 '검둥이 사건'과 연관하여 나는 공동체로부터 미움과 따돌림의 대상이 된다. Z는 혐의를 벗고 이번에는 도둑 소녀가 N의 살인범으로 몰렸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고, 어딘가에서 물고기처럼 차가운 눈동자로 가만히 이 모든 사태를 지켜보고 있을 진범을 찾아내려고 한다.

“저 아이들은 인간이 우습다! 저들은 기꺼이 기계가 되고자 한다. 나사나 바퀴, 쇠공이, 벨트와 같은. 아니 그보다는 더더욱 스스로 총알이 되려고 나선다. 전쟁에서 죽어 쓰러지기를, 전쟁기념탑에 전몰자의 이름으로 새겨지기를 꿈꾼다.

자기 편에게 이익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정의라고 라디오는 외친다. 이롭지 않으면 옳은 게 아니다. 이익을 해치는 자에게는 살인, 약탈, 방화 등 뭐든지 저질러도 된다. 범죄자의 논리이다. 과거 로마의 신흥 부유층은 가난한 자의 부채를 탕감해 주려는 귀족 카피톨리누스를 반역자로 몰아 벼랑에서 떨어뜨려 죽였다.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그러한 범죄는 자기보호란 명분하에 항상 있어왔다. 그래도 과거의 그들은 남몰래 부끄러워하며 범죄 행위를 숨기고자 했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부끄러워하는 대신 공공연히 자랑스러워한다.

이것은 페스트다. 우리 모두는 친구건 적이건 할 것 없이 모두 감염되었다. 우리의 영혼은 검은 종기로 뒤덮였다."



150페이지에 담긴 진실과 순수함

외된 폰 호르바트의 '신 없는 소년'은 150페이지 남짓한 짧은 소설이다. (※ 소설의 독일어 제목 'Jugend ohne Gott' 중 Jugend는 청년기를 의미하므로 '신 없는 청년'으로 번역하는 것이 사전적으로 더 옳겠지만, 소설 내용이 14세 남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신 없는 소년'으로 번역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보고 이렇게 번역했다. 올해 4월 책을 번역해 낸 경북대출판부는 '신 없는 청년'이란 제목을 붙였다.) 언어도 매우 간결하고 쉽다. 긴 설명이나 묘사가 적고 문장은 짧고 선명하다. 또한 내용도 추리소설처럼 전개되므로 범인이 밝혀지는 마지막 장까지 누구나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난해하거나 복잡하지 않다. 도리어 단순한 편에 가깝다. 어떤 독자는 너무 단순하여 심지어 순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마침내 진실과 순수함의 힘을 마주하게 된다. 진실과 순수함. 그것이 어떠한지는 누구나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찾아보기는 어렵다. 1930년대 나치 독일과의 합병을 눈앞에 두고 있던 호르바트의 오스트리아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이 작품은 종교적인 색채는 없지만 성서의 한 이야기가 인상적으로 등장한다. 십자가 아래서 예수의 죽음을 지키던 로마 백부장이 있었다. 그는 예수가 죽는 순간 이 죄수가 신의 아들임을 깨달았다. 그는 분명 그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 깨달음 이후 그는 무엇을 했던가. 기록만으로 추측하자면, 놀랍게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연금을 받으며 교외에서 자식들에게 둘러싸여 평온하게 늙어죽었을까. 신이 세상에 온 것을 목격했으나 아무 일도 하지 않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세상은 신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나치가 지정한 '유해한 도서'

우리에게 어느 정도 낯선 이름인 외된 폰 호르바트는 1901년 헝가리 왕국의 피우메에서 태어났다. 당시 헝가리의 일부였던 슬로베니아 출신 아버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군주국 외교관으로 피우메에서 근무 중이었다. 마자르와 크로아티아, 체코, 그리고 독일의 혈통이 섞인 집안에서 태어난 호르바트는 발칸과 중부 유럽의 여러 나라와 도시들을 돌아다니며 자랐고 독일 뮌헨에서 대학을 다녔다. 젊은 나이부터 희곡을 쓰기 시작했고 재능을 인정받았다. 1933년 독일에서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직후 독일 무르나우에 있던 부모님의 빌라가 수색을 당하자 그는 오스트리아로 간다. 처음부터 파시즘에 비판적이었던 그의 작품은 독일에서 공연이 금지되고 '신 없는 소년'도 1937년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출간된 후 나치의 '유해하며 바람직하지 못한 도서' 리스트에 오른다.

베를린 서가의 주인과 나는 언젠가 “작가들은 어떻게 죽(었)는가”에 대해서 대화한 적이 있는데, 그때 그가 언급한 호르바트의 죽음 때문에 그 이름을 처음 알게 되었다. 어느 날 호르바트는 점쟁이로부터 여행 중에 중대한 사건이 일어날 거라는 예언을 들었다고 전해진다. 그 이후로는 엘리베이터도 이용하지 않을 만큼 조심했다. 1938년 6월 1일 저녁 프랑스 파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친구가 차로 데려다주겠다고 제안했으나 그는 위험하다는 이유로 거절하고 파리 샹젤리제 거리를 걸어 호텔로 향했다. 모든 것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갑자기 돌풍이 불었고, 커다란 소리와 함께 나뭇가지가 부러지면서 그 아래를 걸어가던 호르바트의 뒷머리에 떨어졌다. 호르바트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그의 나이 37세였다.


배수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