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미국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에 도전했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민주당 대선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게 강한 유대감을 표하며 잔뜩 힘을 실어주고 있다. 사실 두 사람의 인생 발자취와 정치적 궤적은 닮은 듯하면서도 다르다. 하지만 미 헌정 사상 '여성 대통령 1호'를 꿈꿨던 클린턴이 공교롭게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대선 무대에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맞붙게 된 해리스를 바라보는 시선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1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지난달 21일 조 바이든 대통령의 민주당 대선 후보직 사퇴 직후, 해리스와 클린턴 사이의 일화는 둘의 유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당일 클린턴은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함께 매사추세츠주(州)의 마서스비니어드섬에 있었는데 전화기가 울렸다. 해리스였다. '대선 후보로 지지해 달라'는 요청에 클린턴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당신의 대선 레이스에) 전력을 다해 동참하겠다(All in)"고 화답했다. 실제로 클린턴 부부는 다른 민주당 지도자들보다도 훨씬 더 먼저 '해리스 지지'를 선언했다.
두 사람은 최근 몇 년간 "조용하게 친분을 다졌다"고 NYT는 전했다. 최근 해리스의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 선택 등 현안을 함께 논의한 것은 물론, 고위직 여성이 능력에 비해 과소평가되는 문제를 두고도 의견을 나눴다. 올해 77세인 클린턴은 해리스(60)보다 17세나 더 많다. 해리스 입장에선 '미국의 첫 여성 대통령 도전'이라는 길을 터 준 클린턴을 인생 선배이자 정치 멘토로 여길 법도 하다.
그러나 2020년 해리스가 부통령에 오르기까지, 두 사람 사이에 이렇다 할 접점은 없었다. 법조인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개인 이력도 겉으로는 비슷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다르다. 변호사로 첫발을 내디딘 클린턴은 남편의 대선 승리로 '퍼스트레이디'(영부인)가 됐지만, 이에 안주하지 않고 △상원의원 △국무장관 △대선 후보 등을 거치며 '거물 정치인'으로 올라섰다. 반면에 검사 출신 해리스는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 상원의원 정도를 지냈을 뿐이다.
정치적으로 갈라선 적도 있다. 클린턴이 2008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했을 때, 샌프란시스코 지방검사장이었던 해리스는 버락 오바마를 지지했다. 오바마는 그해 대선에서 승리해 8년간 미국 대통령을 지냈다.
그러나 강력한 공통점이 있다. 대통령으로 향하는 관문에서 모두 트럼프를 맞닥뜨렸다는 점이다. 클린턴은 2016년 대선 전체 득표에서 공직 경험이 전무했던 '부동산 재벌 출신' 트럼프를 280만 표 이상 앞서고도 선거인단 수에서 밀려 패배했다. 당시 "여성 대통령에 대한 거부감, 기득권 정치에 대한 반감 등 한계를 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여성으로서 '백인 남성' 트럼프를 이기는 게 쉽지만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클린턴이다.
다만 해리스는 석패한 클린턴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각오다. 클린턴이 2016년 "유리천장을 깨겠다"며 젠더 대결 구도를 앞세운 것과 달리, 해리스는 여성·흑인 등 정체성 대신 "중산층 가정에서 성장한 검사 출신 정치인임을 부각하고 있다"고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짚었다.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이었던 오바마가 2008년 대선 때 인종 문제에 집중하지 않고, 경합주 백인 유권자를 겨냥한 연설과 현안에 공들인 것과 유사한 전략이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