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으로 온 '서울 사람'

입력
2024.08.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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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재확산 추세로 혼란한 상황이 전해지고 있다. 격리 의무가 사라진 상황에서 휴가나 출석 인정에 대한 기준이 제각각이라 직장·학교에서의 전파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불현듯 3년 전 일들이 떠올랐다. 코로나로 생겨난 재택 시스템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남편은 지방 발령으로 먼저 이주하고, 8개월 아이와 맞벌이 부모 집에서 직장 생활을 이어가던 때다.

"아이가 콧물이 나서요, 바로 하원해야 해요." 2주에 한 번꼴로 이런 전화를 받았다.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당시 서울 국공립 어린이집에서는 감기 기운이 조금이라도 있는 아이들은 즉시 하원하거나 등원하지 못하게 했다. "아이만 낳으면 다 키워주겠다"고 화통하게 말하던 부모는 직장 생활을 유지해야 했고, 걸음도 떼지 못한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엄마가 오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를 재택 시스템 덕에 아이를 데려와 한 공간에 두고 일했다. 화상회의와 상사의 전화가 이어지는 재택근무 상황에서 잠에서 깨어난 아이 울음소리는 적에게 들킨 약점 같기도 했다. 소리가 들릴까 싶어 우는 아이를 외면하고 문을 닫은 채 가장 조용한 곳에 들어가 전화를 받던 날들은 아직도 떠오르는 수치스러운 순간이다. 그렇게 휴직과 복직을 반복하며 1년여를 버텼다.

버티다 보면 방법을 찾을 수 있겠지 싶었다. 그 무렵 은퇴한 아버지가 4기 암 판정을 받았다. 병간호를 시작한 엄마 곁에서 홀로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할 수 있을까. 오랫동안 보관해두었던 사직서를 꺼내야 했다. 그렇게 서울을 떠났다.

4개월 계약직, 경단녀 환영 고객관리 담당자 모집, 농기계임대사업 운영 기간제 근로자 모집…. 내가 이주해 살 곳의 채용 공고는 두 페이지를 채 넘기지 못하고 끝났다. 홍천 이주 일주일도 안 돼서 채용 정보 사이트는 왜 뒤지고 있는 걸까.

가족의 근무지 이동으로 무작정 이주한 땅. 전국 기초자치단체(시,군,구) 중 면적(1,820㎢)이 가장 넓지만 인구 6만7,000여 명으로 인구 밀도가 희박한 대표적인 인구 소멸 지역에 내가 설 자리 하나 없겠나. 설마 했던 현실이었다. 겨우겨우 뒤져 찾아낸 일자리는 집에서 40분 거리 춘천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럴 바에야 1시간 10분이면 도착하는 서울행 고속버스를 타고 출퇴근할 걸 그랬나 싶기도 했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 및 세대 현황에 따르면 홍천군의 청년 인구 비중은 2013년 24.43%에서 2022년 18.79%로 계속 감소하고 있다. 왜 청년이 이곳을 떠나는지는 먹고살 궁리를 시작하면서 바로 알 수 있었다. 홍천군 사회조사에서도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정책 중 '각종 일자리 창출' 필요성에 대한 수요가 40.7%로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을 떠날 때 나는 스스로를 이렇게 위로했다. '잠시 멈추어 더 나이 들기 전에 안주하기 전에 다른 일도 손에 넣어 보자'고. 정보의 바닷속에서 12년간 온종일 콘텐츠를 생산하던 직장인이 하루아침에 촌 생활을 시작하며 일자리에 대한 두려움이 몰아쳤다. 그 두려움 속에서 나는 스스로 내 이름을 다시 써 내려 가야 했다.

나를 '서울 사람'이라고 부르는 이 고장의 어르신들과 변화를 꿈꾸는 소상공인, 로컬 청년들의 소소한 연대. 서울에서만 살았던 30대 워킹맘, 나의 대책 없었던 귀촌기가 그렇게 시작됐다.


김도담 지역가치창업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