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냐 숙고냐…'8·15 통일 독트린'에 응답 없는 北, 이유는?

입력
2024.08.1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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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국가론 지키며 '무시 전략' 가능성  
"UFS와 묶어 비판 메시지" 관측도


북한이 윤석열 대통령의 ‘8·15 통일 독트린’에 며칠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수해복구와 민심 달래기에 바쁜 김정은 국무위원장 사정에 남측의 통일 독트린을 아예 무시하겠다는 판단이 더해졌다는 해석이다. 한미연합군사연습(한미훈련) ‘을지 자유의 방패(UFS)’ 진행 상황을 지켜본 뒤 반응의 시기와 수위를 결정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통일부는 19일 정례브리핑에서 “통일 독트린에 대한 북한의 공식 반응은 (아직) 없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 취임 직후 대북정책으로 ‘담대한 구상’을 제시했을 때 4일 만에 반응을 보였던 모습과는 딴판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윤 대통령이) 전제조건 없는 대화라는 원칙을 분명히 밝혔고, 서로 부담 없이 상호 대화(를 하자는) 의사를 밝힌 만큼 북한도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부연했다. 군 당국은 18일 오후 대북 확성기 방송을 통해 윤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주요 발언을 전하기도 했다.

대북 전문가들은 대체로 북한의 반응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이다. ①북한 당국 차원에서 반응할 만한 내용이나 접점이 뚜렷하지 않고 ②반응할 경우 그간 설정해 온 ‘적대적 두 국가론’을 부정하는 셈인 데다 ③수해복구라는 현안 해결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통일 독트린에 응답할 경우, 남북(한민족) 관계를 인정한다거나, 남측 메시지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 된다”며 “북한이 반응하는 순간 남측이 실무협의체 등에 대해 새로운 제안을 할 빌미를 주는 셈이라 고심이 클 것”이라고 봤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도 “그동안 북한이 주장해 온 ‘적대적 두 국가론’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당분간은 무시하고 앞으로 계기가 되면 전략적으로 비판 메시지를 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하반기 중 ‘적대적 2국가론’을 구체화할 개헌에 나서는 등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줄 거라는 의견도 있었다.

북한의 ‘숙고 기간’일 뿐이라는 해석도 있다. 당장 수해복구 및 그에 따른 성과 홍보에 집중하기 바쁠 때라 통일 독트린에 대한 대응은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이번 주중에 UFS 또는 통일 독트린 관련 반응이 1차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북한은 그간 UFS를 두고 ‘북침 전쟁 연습’이라고 비판해 온 터라 훈련에 대한 비판 성명을 낼 가능성이 높은데, 이때 통일 독트린을 언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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