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창시자 정봉주, 결국 '개딸'에 발목 잡혔다

입력
2024.08.2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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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 앞두고 강화된 권리당원 표심 작용
"당원들이 이재명과 자신을 동일시한 것" 
"외연확장에 도움 안 돼" …과거 논란도 우려

"그래도 당선은 될 줄 알았는데, 탈락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반응은 한결 같았다. 8·18 전당대회에서 초반 1위를 달리던 정봉주 최고위원 후보가 6위로 탈락한 것은 이변으로 받아들여진다. 1인 2표라는 방식에 당원들이 일치단결해 '정 후보 찍어내기'라는 결말을 만들어 냈는데 이는 강성 지지층 중심의 민주당 현주소를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애초 정 후보가 그간 많은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점도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정 후보 탈락은 예상외의 결과다. 민주당의 중진 의원은 19일 통화에서 정 후보 탈락을 두고 "당선권 밖에 있던 사람이 당선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봤지만, 안에 있던 사람이 밖으로 나오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전대 레이스 초반 유일한 원외 도전자로 1위에 오르며 돌풍을 일으키던 정 후보는 이재명 대표의 김민석 최고위원 간접 지원 여파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위기를 느낀 정 후보가 "이재명팔이 무리를 뿌리 뽑겠다"고 정면돌파를 선언하면서 상황은 악화돼 결국 당선권 밖인 6위로 밀려났다.

정 후보가 1위에서 6위까지 미끄러진 가장 큰 이유는 강화된 권리당원 당심 자극이 꼽힌다. 민주당은 이번 전대를 앞두고 권리당원 영향력을 확대하는 내용의 당헌·당규를 개정했다. 이 과정에서 강성 지지층인 '개딸'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란 우려도 나왔지만, '당원주권 확대'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정신이라는 명분으로 밀어붙였다. 이 때문에 이번 전대에서 권리당권 표는 지난 전대 대비 16%포인트 확대된 56%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이런 권리당원들의 '수박(겉과 속이 다르다는 의미로 주로 비이재명계를 비하하는 은어)' 찍어내기 레이더에 정 후보가 걸려들었다. 정 후보는 '수박'이란 은어를 가장 처음 사용한 당사자로 알려져 있는데, 결국 제 발목을 잡은 셈이 됐다. 강성 친이재명(친명)계 그룹인 더민주혁신회의 소속의 한 의원은 이날 "당원들은 이재명 대표와 자신을 동일시한다"며 "그런데 정 후보가 '이재명팔이'라고 언급한 것은 당원들을 비판한 것과 같다"고 말했다.

애초 당원들은 '나는 꼼수다' 등을 통해 '이명박(MB) 전 대통령 저격수로 활동하다 구속까지 된 정 후보의 시원한 화법에 매력을 느꼈지만, "이재명팔이" 발언 이후엔 한순간에 제거해야 할 대상이 됐다는 얘기다. 득표율 1위로 수석최고위원이 된 김민석 의원은 이날 첫 최고위원회의에서 정 후보 탈락을 "당원 집단지성은 민주당의 가장 큰 힘"이라고 추어올렸지만, 이는 아전인수격 해석이란 얘기가 나왔다. 되레 정치권에서는 강성 당원들의 영향력에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민주당의 민낯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외연확장 차원에서 정 후보의 과거 행적을 정 후보 탈락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의견도 있었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당원들은 동정표가 많았던 것 같은데 최고위원이 되는 건 다른 문제였다"면서 "민주당은 확장성을 가지고 국민의힘에 실망한 중도층을 끌어와야 하는데 그런 역할에 정봉주는 적합한 후보가 아니었다. 지난 총선 공천 때부터 결과적으로 문제를 일으킨 사람을 걸러냈다"고 말했다.


김정현 기자
박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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