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 이후 최악의 물리적 충돌

입력
2024.08.2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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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1 폴 버니언 작전

1976년 8월 18일 오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감독하던 미군 장교 2명이 북한군 30여 명에 의해 도끼로 살해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25년생 15m 높이의 나무가 무성해져 북한군 초소를 제대로 관측할 수 없다고 판단한 미군 경비중대장 아서 조지 보니파스(Arthur G. Bonifas, 당시 33세) 대위가 소대장 마크 토머스 배럿(Mark T. Barrett, 당시 25세) 중위와 함께 부사관과 사병 4명, 한국군 장교 등 5명을 동원해 노무자 5명의 작업을 감독 경비하던 중이었다.

북한군은 사전 협의가 없었으니 작업을 멈추라고 요구했지만 미군이 불응했다. 북한군은 20여 명의 병력을 보강한 뒤 곡괭이와 몽둥이로 미군을 공격했고, 격투 과정에서 노무자들이 휴대한 작업용 도끼까지 휘둘렀다. 미군 장교 두 명이 숨졌고 미군과 국군 각 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당시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열린 비동맹국회의에 참석한 김정일은 “미군에 의한 무도한 공격”을 규탄하며 참가국의 주한미군 철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미 중앙정보부(CIA)는 판문점 공격이 북한의 계획적 도발이라 판단했다.

제럴드 포드 미 행정부는 확전 가능성을 최소화하면서 북한을 응징할 작전을 수립했다. 민담의 나무꾼 폴 버니언(Paul Bunyan)의 이름에서 따온 '폴 버니언 작전'이 테프콘 2(공격 준비 태세) 상황 속에 21일 오전 7시 시작됐다. 23대의 트럭에 분승한 대규모 한미 연합군은 사건 현장에서 미군 공병대의 전기톱 작업을 경비했고, 인근 포대까지 북측 경비초소와 교량을 조준하고 있었다. 코브라 공격헬기 7대, B-52 전폭기 3대가 F-4 팬텀의 호위를 받으며 영공을 선회했고, 항공모함 USS 미드웨이호도 출동했다. 곤봉으로 무장한 한국군 특전여단 64명도 비공식적으로 작전에 동참했다. 북측 경비 초소는 침묵했고, 휴전 이후 최악의 대치 상황이 그렇게 막을 내렸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