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대대적인 수사인권 개선 작업에 나섰다. 독직폭행이나 경찰관 막말 논란 등이 사라지고 과거보다 경찰 내 인권 조치가 많이 개선됐음에도, 수사 과정에서 인권 조치 미비가 끊이지 않는다는 국가인권위원회 등 외부 지적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경찰이 받은 인권위 권고 중 80% 이상이 수사절차 미준수 관련 사안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19일 경찰 등에 따르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이달 1일부터 다음 달 31일까지 두 달 동안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인권취약 요소에 대한 진단 및 개선에 착수했다. 경찰청은 지난해 3월 내부 훈령으로 '경찰 수사에 관한 인권보호규칙'을 제정하고 △수사인권 관련 주요 절차 준수 여부 △인권위 권고 이행 △조사·구금시설 진단 등을 매년 실시하고 있다. 이번 진단·개선은 지난해 11월 이후 두 번째 점검으로, 사후 징계·교육 방식에서 선제적인 개선으로 정책 방향을 세운 것이 핵심이다.
우선 각 시·도경찰청이 '수사인권진단 체크리스트'를 활용해 소속관서를 대상으로 자체 진단을 실시한다. 지적이나 적발 위주가 아닌 미비점 보완 중심이라는 게 경찰 측 설명이다. 체크리스트에는 △수갑 등 사용 지침 △사건진행상황 통지 시 유의사항 △사건 관계인이 사회적 약자일 경우 신뢰관계인 동석 준수 여부 등이 담겼다.
이후 국수본은 진단결과를 토대로 선정한 지역별 두세 개 관서를 직접 방문해 진단을 실시할 예정이다. 시·도청 간 교차 진단도 할 계획이다. 현장간담회를 통해 애로사항 및 제도 개선 의견을 수렴하고, 우수한 사례를 발굴해 유공자 선정 등을 할 예정이다.
경찰이 이렇게 수사인권에 신경을 쓰는 데는 이유가 있다. 경찰이 인권위로부터 지적받은 인권침해 중 과반수가 수사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경찰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인권위의 경찰 관련 인권침해 권고는 모두 10건으로 이 중 8건이 수사(수사·형사·여성청소년·교통수사) 기능에 대한 것이었다. 지난해 동기(23건) 대비 전체 건수는 감소했지만, 전체 권고 중 수사기능이 차지한 비율은 65.2%에서 80%로 증가했다.
특히 가장 기본이 되는 절차 준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 수사 기능이 받은 권고 8건 모두가 수사절차 미준수가 원인이었다. 경찰력 과잉이나 폭언 등 부적절 언행은 한 건도 없었다. 지난해에도 수사기능 권고 22건 중 20건(90.9%), 2022년 19건 중 15건(78.9%)이 절차를 지키지 않아서였다.
실제로 지난해 4월에는 무전취식 혐의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채취동의서나 영장 없이 피의자 유전자(DNA)를 채취했다가 서면경고를 받기도 했다. 발달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 인권 보호도 미흡했다. 올해 4월에는 손가락에 장애가 있는 피해자는 구술로 고소·고발이 가능함에도, 경찰에 고소장 대필을 요청했다가 접수를 거부당하는 일도 있었다. 피해자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대질조사를 진행하거나, 성매매 단속 시 피의자 알몸을 촬영한 영상을 단속반 단체대화방에 공유하고 언론에 제공해 직무교육을 권고받기도 했다. 국수본 관계자는 "범인 검거도 중요하지만, 수사의 완결은 사람"이라며 "인권 중심 수사체계 구축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