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수사로 이른바 '36주 임신중지(낙태) 브이로그(일상 영상)'가 사실로 드러난 가운데, 낙태 수술을 집도한 70대 병원장이 해당 태아를 화장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산(태아가 모체로부터 완전히 분리되기 전에 사망) 가능성을 높이는 정황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태아를 화장하려면 사전에 사산 증명서를 화장 업체에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찰의 살인 혐의 입증이 더 어려워진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18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36주 낙태 경험담을 유튜브에 올린 20대 여성에게 수술을 해준 수도권 A병원의 70대 병원장이 태아 시신을 화장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후 화장 처리했다는 확인서도 화장 업체로부터 발급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임신 4개월(12~16주) 이전 사산아는 의료폐기물로 간주돼 폐기물관리법에 의해 처리된다. 그 기간 이상의 태아가 사산하면 시신으로 규정해 반드시 매장 또는 화장을 해야 한다. 이때 △사산아 부모의 인적사항(성명, 연령, 직업, 주소 등) △사산의 종류(자연 사산, 인공 임신중지 등) △사산 원인 등을 기재한 사산 증명서를 화장 업체에 내야 한다. 앞서 이 병원장은 살인 혐의로 경찰에 입건된 뒤 "산모로부터 아이를 꺼냈을 때 이미 사산된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또 경찰이 압수수색 등으로 확보한 의료기록에도 사산으로 기재돼 있다. 결과적으로 태아의 사산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정황이 하나 더 추가된 셈이다. 물론 A병원 측이 화장 업체에 제출한 서류 내용이 허위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서류 조작이 아니라면 경찰이 20대 여성과 병원장의 살인 혐의를 입증하는 건 더욱 까다롭다.
2019년 4월 헌법 불합치 결정으로 형법상 낙태죄가 사라지면서 살인죄를 규명하려면 산모의 몸에서 꺼냈을 당시 살아있는 아이를 의료진이 사망하게 했는지 여부가 증명돼야 한다. 형법 250조는 살인죄를 '사람을 살해하는 것'으로 규정하며, 판례상 '분만이 시작된 시점'부터 태아를 사람으로 간주한다. 앞서 2019년 34주 태아를 낙태 수술하던 중 산모 몸 밖으로 나오자 물에 넣어 질식사하게 한 혐의로 기소된 산부인과 전문의의 경우 살인죄로 징역 3년 6개월 확정 판결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시 집도의는 태아 시신을 의료폐기물로 둔갑시켜 수거업체에 넘겨 은폐를 시도하기도 했다. 보건복지부도 이 사례를 참고해 이번에도 살인 혐의로 수사를 의뢰했다. 그러나 당시엔 시술에 참여했던 간호조무사 등으로부터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었다"는 증언이 일관됐던 점이 유죄 판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A병원 내부엔 수술 당시를 확인할 만한 폐쇄회로(CC)TV는 설치돼 있지 않은 것으로 이미 드러났기 때문에 경찰은 의료기록 분석과 해당 수술에 참여한 병원 관계자들을 불러 정확한 사실 관계를 확인할 방침이다. 그러나 만에 하나 사산이 아니라고 해도 당사자들이 처벌을 감수하고 진실을 털어놓을 확률은 희박해 수사에 난관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