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배는 사공이 많아야 제대로 간다

입력
2024.08.1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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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

대학 시절 봤던 숱한 표어와 구호 중, 가장 가슴을 뛰게 만든 문장이다. 내가 남보다 특별히 공동체정신이 투철해서가 아니다. 누구나 가슴 한편엔 ‘함께 누림’을 지향하는 소망을 품고 산다. 비록 자본주의 부속품으로 ‘돈 돈’거리면서 비루한 현실을 살아도, 우린 개인의 영달뿐 아니라 남들과 조화로이 사는 세상도 함께 꿈꾼다.

열 사람이 함께 걷자고 해서, 일론 머스크나 스티브 잡스가 홀로 보여준 ‘혁신 리더십’을 거부하잔 얘기는 아니다. 유능한 소수의 번뜩이는 천재성보다, 우직한 다수의 건전한 상식이 더 필요한 때도 있다는 걸 부인하지 말자는 거다. 성찰 없는 전진은 위험하며, 공정 없는 효율은 오래 못 가는 법이다.

이런 정신이 국가 운영에 반영된 게 바로 위원회식 행정기관이다. 효율을 위해서라면 장관 혼자 부처를 이끄는 게 당연히 좋다. 그러나 공리보다 공정의 최대화가 필요한 영역에선 절차적 정당성을 위해 일부러 복수 위원의 의결을 거치도록 한다. 결산·감찰(감사원), 방송·통신 규제(방통위), 부패방지(권익위), 인권(인권위) 등 공적 정당성이 최우선인 일을 부처 아닌 위원회에 맡기는 것이다.

행정학 책에나 나올 얘기를 굳이 쓴 이유가 있다. 윤석열 정부 동안, 유독 위에 적시한 저들 위원회에서 파행과 분란이 끊이지 않았음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감사원법에 ‘직무에선 독립 지위를 가진다’고 되어 있음에도, 감사원장은 “대통령을 지원하는 기관”이라고 정체성을 정의했다. 결국 서해 공무원 피격, 권익위원장 근태, 공영방송 방만경영 등 정치적으로 해석될 감사가 이어졌다.

방통위는 가장 망가진 합의제 기관 중 하나다. 전파라는 공공재를 다루는 만큼 독단 운영을 배제하고 위원 과반수 의결로 결정하도록 법에 명시돼 있다. 위원 선임엔 여야 안배 규정까지 있다. 이렇게 타협하고 합의함이 마땅한 조직에 편파 논란 수장이 연속 지명됐고, 정부는 야당이 추천한 위원을 임명하지 않았다. 반부패 기관인 권익위는 김건희 여사 명품가방 수수 사건 처분에서 납득하지 못할 해명을 이어갔고, 인권위는 보수화가 꾸준히 진행 중이다.

백 번 양보해 독임제 기관인 부·처·청의 일방적 운영은 ‘있을 수도 있는 일’이라 치자. 장관 인사청문회가 무의미해진 것은 이미 이전 정부에서 시작됐고, 행정권은 대통령 고유 권한이란 점에서 다소나마 이해할 여지도 있다. 독선이 잘못된 결과를 가져왔다면, 사후 심판(선거)으로 바로잡을 수 있고 장관들의 직권남용 사건에서 보듯 사법적 통제 수단도 있다.

그러나 위원회에서의 폭주는 좀 다르다. 정당성을 위해 일부러 합의 방식을 택한 조직에서, 타협과 공존이 실종된 것이라 명백히 선을 넘은 것이다. 대통령으로부터 100% 자유로운 행정조직은 없겠지만, 어떤 정권이든 손대지 말아야 할 것은 있고 누가 정권을 잡든 꼭 해야 할 일도 존재한다. 그런 업무를 부처 대신 위원회에 맡긴 거다.

감사원, 방통위, 권익위, 인권위에 이어 또 어떤 합의제 기관이 독주와 파행 논란을 빚을까 생각하면 암담하다. 전례가 되어 다음 정부에서 반복될 수 있다. 부처의 실패는 정권의 실패라 애써 평가절하할 수도 있지만, 합의제 기구의 일탈은 정의 구현 시스템의 불능으로 이어져 결국엔 나라 전체의 실패로 비화하고 만다.

이영창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