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에서 잇따라 불이 나자 국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이 커지는데 국내에서 손꼽히는 배터리 전문가인 윤원섭 성균관대 에너지과학과 교수는 "충전을 많이 하는 게 전기차 화재의 결정적 원인이 아니다"라고 18일 밝혔다. 이는 최근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가 전기차의 과충전을 문제 삼아 지하주차장 진입 금지와 충전율 제한 조치 등을 하는 것에 맞서는 주장이다.
이날 윤 교수의 의견은 연합뉴스, 뉴시스, 뉴스1 등 국내 주요 통신 3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전해졌는데 현대차 그룹이 자리를 마련했다. 현대차 측은 최근 전기차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퍼지는 것을 막고 소비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배터리 제조사 정보 공개와 배터리 핵심 기술 배터리관리시스템(BMS)까지 투명하게 공유하는데 이번 인터뷰도 같은 맥락에서 추진한 것으로 풀이된다. 윤 교수는 성균관대와 삼성SDI가 손잡고 세운 배터리공학과의 대표 교수이자 성균에너지과학기술원 차세대배터리 연구소의 소장도 맡고 있다.
윤 교수는 전기차 배터리 화재 원인을 과충전으로 단정 짓는 것을 우려했다. 그는 "충전 깊이(충전량)와 화재는 당연히 관련이 있지만 지배적 원인은 아니다"라며 "100% 충전이라는 게 굉장히 상대적 개념이라서"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 양극의 100% 용량은 (g당) 275mAh(밀리암페어)가량인데 실제로 사용하는 것은 200∼210mAh 정도이고 이를 100%라고 규정한다"며 "우리가 100%라고 말하는 것은 안전까지 고려한 배터리 수명"이라고 설명했다. 충전 깊이는 학계에서 사용되는 용어인 '방전 깊이'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전지는 표시된 용량만큼 사용한 뒤에도 약간 더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방전 깊이는 100%를 넘어설 수 있다.
최근 지자체들이 화재 예방을 이유로 '충전율 90%'를 권고하고 있다. 또 아파트 등 공동주택 지하주차장에 충전율 90%를 넘는 전기차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윤 교수는 전기차 화재의 원인으로 충전율보단 셀 결함 등을 지목했다. 그는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을 감안하면 충전 깊이보다는 셀 내부 결함이나 그 결함을 관리하는 BMS 문제로 화재가 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또 인천에서 일어난 메르세데스-벤츠 EQE의 화재 원인을 "배터리 셀 내부 결함이 가장 합리적 이유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결함이라고 하면 불량처럼 느껴질 수 있는데 그보다는 수억 개의 셀을 만들면서 어쩔 수 없이 나오는 셀의 편차라는 말이 맞다"며 "그 편차 중 가장 밑단에 있는 (성능이 떨어지는) 셀을 계속 쓰면 불안정해질 수 있어 이를 잘 관리했다면 초동 조치를 할 수 있었는데 아쉽다"고 덧붙였다.
윤 교수는 특히 BMS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배터리 이상은 온도나 전압 변화 등 시그널(징조)이 있다"며 "자동차 회사는 센서로 이를 감지하고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윤 교수는 배터리 셀 내부 결함은 전조 증상이 있다며 갑자기 '팍' 하고 불이 나는 것이 아니고 조금씩 쌓이는 것이기에 전압이나 온도를 체크하면 관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윤 교수는 "충전 깊이와 화재 사이의 인과 관계가 밝혀지지 않은 채 지하주차장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은 마녀사냥의 느낌이 좀 있다"며 정부와 지자체 등이 배터리·자동차 전문가와 깊이 있는 협의를 통해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번 인터뷰 자리를 마련한 것을 두고 "전기차에 대한 오해가 많아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려고 배터리 전문가에게 인터뷰를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윤 교수 역시 "학자 입장에서 바로잡을 부분을 얘기해야 할 것 같아 인터뷰에 응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