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관련 항명죄로 재판 중인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 측이 군사법원에 윤석열 대통령 개인에 대한 사실조회를 요청했다. 법원이 받아들이고 윤 대통령이 이에 응한다면 사실상 서면조사나 다름없다. 이른바 'VIP 격노설' 등에 대한 진위가 가려질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18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박 대령 변호인단은 이틀 전인 16일 중앙군사법원에 윤 대통령 개인을 상대로 한 사실조회 신청서를 접수했다.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의 채 상병 사건 기록 이첩 보류 지시와 기록 회수 그리고 박 대령을 집단항명수괴 혐의(이후 항명 혐의로 변경)로 수사를 개시하는 데 대통령이 관여했는지 확인하려는 목적이다.
윤 대통령에게 답을 구할 사항으로는 6가지가 적시됐다. 먼저 'VIP 격노설'에 대해 물었다. ①지난해 7월 31일 국가안보실 회의에서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냐"는 취지 발언을 했는지 ②같은 회의에서 "수사권이 없는 해병대 수사단에서 인과관계가 불분명한 1사단장(임성근) 등을 형사입건한 것은 잘못이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는지가 사실조회사항에 담겼다.
윤 대통령과 수사외압 의혹 관계자들과의 통화 여부와 그 내용에 대해서도 물었다. ③지난해 7월 31일 오전 11시 54분 대통령실 내선번호 '02-800-7070' 전화를 이용해 이종섭 전 장관의 휴대폰으로 전화했는지, 했다면 어떤 말을 주고받았는지 ④같은 날 해당 내선번호로 조태용 당시 국가안보실장, 주진우 당시 법률비서관에게 전화했는지 ⑤8월 2일 개인 휴대폰으로 이 전 장관에게 전화했는지, 했다면 어떤 말을 주고받았는지 ⑥같은 날 임기훈 당시 대통령실 국방비서관 및 신범철 당시 국방부 차관과 각각 통화한 사실이 있는지, 있다면 이 사건 이첩기록회수 또는 피고인(박 대령)에 대한 수사개시 등과 관련된 내용인지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채 상병 사건 관련 윤 대통령에게 직접 사실관계에 대해 공식 질의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박 대령 측은 "본인 통화 내용이나 경험에 대한 것이라 개인 자격의 윤석열이 답해줘야 하는 부분인 만큼, 처음으로 대통령실이 아닌 대통령에 대해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박 대령 측이 지난달 '02-800-7070' 내선번호의 사용자를 특정하기 위해 대통령실에 사실조회신청을 했고 재판부가 허가해, 대통령비서실이 "국가안보와 직결된 사안"이라며 사실상 답변을 거부한 적은 있다.
만약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이고 윤 대통령이 답변한다면, 'VIP 격노설'에 대한 사실관계가 명확히 드러날 수 있다. 박 대령 측은 '격노설'을 사건 회수와 박 대령에 대한 수사 시발점으로 의심하고 있다. 반면, 이 전 장관 등 군·국방부 관계자들은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윤 대통령 역시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격노설 관련 질문에 "'왜 이렇게 무리하게 진행을 해서 이런 인명사고가 나게 하느냐'고 국방부 장관을 질책했다"며 에둘러 부인했었다.
윤 대통령이 사실조회에 응할 경우 수사외압 의혹을 수사 중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도 이를 확보해 수사에 참고할 수 있다. 공수처는 최근 '3전4기' 끝에 윤 대통령 개인 휴대폰에 대한 통신영장을 발부받았지만, 결국 통화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통화 당사자들의 진술을 끌어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한편, 박 대령 측은 '용산-국방부'를 잇는 가교로 지목된 임기훈 전 국방비서관에 대한 증인신청서와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의 업무수첩 사본 제출 명령 신청도 같은 날 군사법원에 접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