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 만장일치로 무죄가 선고된 사건 항소심에서 추가 증거를 조사해 결론을 뒤집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지엽적 사정들에 주목해 추가 증거 조사를 하고 국민참여재판 결론을 뒤집는 건 배심원의 만장일치 의견의 무게를 존중하지 않는 것으로 비칠 수 있으니 경계해야 한단 취지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A씨 원심을 파기하고 지난달 25일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2011년 12월 대부업자인 B씨를 상대로 "수익성이 아주 좋은 물류 사업이 있다"면서 "화물트럭 구입 자금을 빌려주면 원금과 수익금 일부를 지급하겠다"고 속여 2년간 31억5,900만 원을 가로챈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재판 과정에서 "수익금을 주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어 기망 행위가 없고, 편취 의사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에서 A씨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배심원 7명이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했고, 이는 재판부 심증에도 부합해 그대로 채택됐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를 기망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2심은 이를 뒤집고, A씨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검찰 요청을 받아들여 B씨와 B씨의 배우자 등 4명을 추가 증인 신문했는데, 해당 진술의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이를 유죄 판단의 근거로 들었다.
상고심 쟁점은 국민참여재판으로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사건에 대해 2심에서 어디까지 추가 증거 조사를 할 수 있는지였다. 대법원은 "1심에서 배심원 만장일치로 내린 무죄 평결이 재판부 심증에 부합해 그대로 채택됐다면 항소심에서의 추가적이거나 새로운 증거 조사는 필요성이 분명하게 인정되는 예외적인 경우에 한정해 실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A씨 항소심 재판에서 새로 채택된 증인들의 진술은 1심에서 이미 고려된 사정 중 일부이거나 부수·지엽적 사정에 불과하다는 판단이다.
결국 대법원은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부수·지엽적 사정에 주목해 의미를 크게 둔 나머지 1심 법원의 판단을 쉽게 뒤집는다면 증거의 취사 및 사실의 인정에 관한 배심원의 만장일치 의견의 무게를 존중하지 않은 채 법리에 반하는 결과가 될 수 있어 경계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만장일치 무죄 평결을 받아들여 무죄판결을 선고한 경우, 항소심에서 추가로 증거를 조사해 결론을 바꾸는 것은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진일보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