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EBS '스페이스 공감'의 20주년 기념 전시를 보기 위해 서울 노들섬을 찾았다. 전시장은 관람객들로 가득 찼다. 의외였다. '스페이스 공감'은 도덕적 부채 없이 극한의 자극과 재미를 추구하는 '도파민 시대'의 유배지라 여겨질 정도로 자극과는 먼 곳에 자리한 음악 프로그램이다. 대중의 인지도가 낮은 가수도 나오고, 15초도 길다는 요즘 시대에 음악가 한 사람에 주목해 최소 30분 이상을 라이브로 담는다. 덕분에 20년의 절반 가까운 시간 동안 축소와 폐지라는 단어 앞에 미약한 촛불처럼 흔들리기도 했다.
이 모든 냉소는 '스페이스 공감' 20주년 전시를 찾은 관람객을 보며 속절없이 무너졌다. 그런 생각 자체가 불손하게 느껴질 정도로 전시장을 찾은 이들은 누구보다 진지하게 프로그램의 20주년을 온몸으로 체감했다. 20년 동안 국내외 아티스트가 방문한 흔적이 그대로 담긴 공연 배너 앞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이름을 찾으려 같은 자리를 뱅뱅 돌았다. 다큐멘터리가 상영되는 공간에는 사뭇 심오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EBS 심의 규정에 맞춰 바꾼 '비방용 가사'를 모은 곳에서는 심심치 않게 관람객의 웃음 소리도 터져 나왔다. '스페이스 공감'의 공연장인 '공감홀'의 의자를 떼어 꾸며 놓은 곳엔 관람객들이 너도나도 의자에 앉았다. 사람들의 다채로운 표정이 인상 깊었다. 이 곳에서 울려 퍼진 음악을 떠올리며 각자의 추억을 곱씹는 듯한 모습이었다.
'도파민 샤워'를 원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대중음악도 위기를 맞았다. 오감을 자극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귀로만 대중을 사로잡는 건 불가능한 미션처럼 여겨졌다. 돌파구를 찾기 위해 기획사들은 영상 제작에서 부가 콘텐츠, 팬 관리까지 음악 외적인 부분에 힘을 쏟기 시작했다. K팝 아이돌, 인디밴드 모두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창작자들도 흔들렸다. 독창성 대신 자극적 관심을 부르는 콘텐츠들이 쏟아졌다. 그럴수록 음악 청취자들은 순간이 아닌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음악'에 대한 갈증이 커졌다. 도파민과 담을 쌓은 '스페이스 공감'의 20주년 전시에 관객이 몰린 이유다.
관람객들은 '스페이스 공감' 전시회장에 마련된 CD 플레이어로 '2000년대 명반'을 줄을 서 들었다. 대부분 CD 플레이어란 기기 자체를 처음 만져 보는 듯한 인상이었다.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굳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CD를 넣는 방법에서 조작 방법까지 ‘굳이’ 하나하나 살피고 물어 음악을 들었다. 그 모습에 새삼 놀랐다. 불과 일주일 전, 절절 끓는 땡볕에 ‘굳이’ 뛰어들어 음악을 온몸으로 흡수하던 이들의 모습이 자연스레 겹쳤다. 지난 2일부터 4일까지 인천 송도달빛축제공원에서 열린 인천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엔 총 15만 관객이 몰렸다. 낮 최고 기온이 34도까지 올라 푹푹 찌는 폭염에도 음악을 듣기 위해 몰린 행렬이다. '굳이' 수고해 음악을 만들고 '굳이' 수고해 음악을 찾고 즐기고자 하는 이들이 이렇게나 많다. 도파민 시대에 길을 잃고 헤매던 대중음악의 다음 행선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