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에서 역대 최연소 총리가 탄생했다.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막내딸, 올해 37세인 패통탄 친나왓 집권 푸어타이당 대표가 주인공이다. ‘사상 첫 부녀 총리’이자, ‘여성 총리 2호’라는 기록도 세웠다. 태국 정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친나왓 가문’은 다시 정치 전면에 서게 됐다.
16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태국 하원은 이날 찬성 319표, 반대 145표, 기권 27표로 패통탄 대표를 신임 총리로 선출했다. 푸어타이당이 이끄는 연립정부는 전날 그를 단독 후보로 지명했다. 이에 따라 패통탄은 지난 14일 헌법재판소의 해임 결정으로 물러난 세타 타위신 총리를 이어 제31대 총리에 오르게 됐다. 국왕의 승인 절차를 거치면 공식 취임하고, 임기는 4년이다.
패통탄의 총리 선출은 태국 정계에 많은 이정표를 세웠다. 우선 ‘최연소 총리’에 이름을 올렸다. 부녀 총리가 나온 것도 사상 처음이다. 아버지 탁신 전 총리(2001∼2006년 재임), 고모 잉락 친나왓 전 총리(2011∼2014년)에 이어, 가문의 세 번째 총리직도 꿰찼다. 탁신 전 총리 매제이자 패통탄의 고모부인 솜차이 웡사왓이 2008년 잠시 총리직을 맡았던 것을 포함하면 일가의 네 번째 총리이기도 하다. 외신들은 “태국판 케네디가(家)가 탄생했다”고 평가했다.
세 자녀 중 막내로 1986년 미국에서 태어난 패통탄은 태국 최고 명문인 쭐랄롱꼰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서리대에서 국제호텔경영 석사 학위를 받았다. 가족 소유 기업을 경영하다가 2021년 10월 부친이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정당인 푸어타이당 고문을 맡으며 정계에 입문했다. 지난해 5월 총선에서 만삭의 몸으로 유세를 진두지휘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제왕절개 수술로 둘째 아이를 낳고 이틀 만에 복귀해 주목받기도 했다.
그 이후 도시 빈민층과 농민 등 친(親)탁신계 지지를 얻으며 차기 총리 후보로 급부상했다. 다만 푸어타이당은 당시 총선에서 ‘왕실모독죄 폐지’ 등 파격적 공약을 앞세운 전진당 돌풍에 밀려 원내 1당 등극에 실패했다.
그러나 전진당의 피타 림짜른랏 당시 대표가 기득권 정당의 반대로 총리 선출 투표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작년 7월 푸어타이당에 연립정부 구성 기회가 넘어갔다. 패통탄에게 총리직 기회가 주어지는 듯했지만, 당은 세타 전 총리를 후보로 지명했다. 대신 패통탄은 같은 해 10월 당 대표로 선출됐다. 정치권에 발을 들인 지 불과 3년 만에 총리직까지 차지한 셈이다.
최우선 과제는 태국의 정치 혼란 수습이다. 지난 7일 헌법재판소가 ‘왕실모독죄 개정은 체제 전복 시도’라며 전진당을 강제 해산하고, 일주일 뒤에는 현직 총리까지 해임하면서 태국 정국은 극도의 혼돈에 빠져 있다.
부친인 탁신 전 총리의 사법 리스크도 숙제다. 태국 검찰은 지난 6월 탁신 전 총리가 2015년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 때 왕실 모독 발언을 했다고 보고 그를 기소했다. 당시 그는 태국 왕실 추밀원이 여동생인 잉락 총리를 끌어내린 2014년 군부 쿠데타를 지원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유죄 판결 시 탁신 전 총리가 또다시 실형을 살면 잠시 봉합된 친탁신계와 친군부 간 묵은 갈등이 재점화할 수도 있다. 아버지 후광을 입고 성장한 신임 총리로선 군부와 ‘불안한 동거’를 하게 된 셈이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패통탄은 태국의 경제 침체, 군부와 왕당파가 반복적으로 민주적 과정을 방해하는 혼란스러운 정치적 상황 등 수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며 “태국 의회가 젊은 여성 총리를 선택한 것이 양극화로 위기에 직면한 태국 정치의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