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인위적 정계개편 가능할까

입력
2024.08.16 18:00
18면
'열린우리당식 창당' 국민적 동력 없어
'3당 합당' 꼼수도 민정계 와해로 몰락
정계개편 불가피 현실, 근본문제 해소해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정계개편 이야기가 슬슬 떠오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여당 대표로 양분된 집권세력의 갈등구조가 배경이다. 인위적 정계개편은 도발적이거나 공세적 자신감에서 비롯되지만,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경우야말로 절실해진다. 임기 5년의 절반도 지나지 않은 현직 대통령 측이 자신의 수족이자 국정동반자인 집권당과 딴살림을 차리고 싶어 한다는 ‘합리적 의심’이 언제 현실화할지, 여의도에선 빠지지 않는 화두다.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가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광복절 복권’을 두고 “윤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친문”이라며 “한동훈과 한 몸이 되려면 새 변수를 만들 필요가 없었다”고 주목했다. 그는 올해 4월 ‘양정철 비서실장, 박영선 총리발탁설’이 나왔을 때도 윤 대통령의 정치적 뿌리가 문재인 정부에 있다며 정계개편으로 상상 못할 대권주자를 만들려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복권으로 김 전 지사의 2027년 대선출마가 가능해졌으니 정가의 뜨거운 이슈가 된 건 자연스럽다.

# 첫해부터 김한길 역할론 주목. 용산 측은 대통령 고유권한 행사에 여당 대표가 반대하는 자체가 금도를 넘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한동훈을 제2의 유승민, 제2의 이준석으로 만들려는 감정적 흐름이 친윤계에서 적지 않게 확인된다. 집권 첫해 ‘윤핵관 1세대’가 퇴진하고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에게 힘이 실린다는 관측이 나올 무렵에도 ‘윤석열 신당설’이 돌았다. 김 위원장은 민주당 시절 친노, 친문과 대립각을 세워온 데다 ‘3김 시대’ 이후 외부 도움을 받지 않고 독자신당을 만든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한때 국민통합위 전국조직이 정당으로 돌변할 것이란 억측이 나오기도 했다. 윤 정부 들어 정치 전면에 서지 않았다는 점에서 계속 정치권 지각변동의 근원으로 지목될 것이다.

지난해에는 친윤계의 ‘분당식 창당론’이 거론됐다. 이준석 사태와 안철수의 당권 장악을 우려한 윤 대통령과 친윤계가 집단탈당한 뒤 총선을 치른다는 구상이다. 17대 총선을 앞두고 노무현 대통령과 친노가 열린우리당을 창당한 것을 벤치마킹한 격이다. 물론 낮은 지지율에 국정동력조차 취약한 윤 대통령이 이 모델을 따르긴 누가 봐도 불가능했다.

# 반(反)이재명 정계개편인가. 지금 상상할 가설의 취지는 크게는 1990년 ‘3당 합당’ 모델에 가깝다. 1988년 총선결과는 민정당 125, YS민주당 59, DJ평민당 70, JP공화당 35석이었다. 최초의 여소야대였고 노태우는 주도적 국정운영이 불가능했다. 여러 정계개편 구상 중 일본 자민당식 보수대연합론이 있었지만 실현가능성에 의문을 품은 경우가 다수였다. 그럼에도 호남의 평민당을 고립시키며 200석을 훨씬 넘는 공룡여당이 전격 탄생했다. DJ는 현상유지를 바랐지만, YS와 JP는 구도가 바뀌길 원했다. 지금 ‘여의도 대통령’으로 불리는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당시 DJ보다도 영향력이 막강하다.

정작 여권의 현실은 정계개편은커녕 ‘YS-이회창 충돌’에 가깝다. 보수공멸의 위험성이다. 한동훈이 속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대통령과 당대표의 잦은 갈등이 여권에 득 될 게 없다는 진영내 역풍을 맞을 수 있다. 과거 3당 합당은 대중적 인기가 있는 YS를 끌어들여 민정계가 정권을 계속 창출할 기반을 확대한다는 취지였지만, 결과는 거꾸로 갔다. 이를 추진한 노태우 코어그룹이 정치적 아마추어였다는 얘기다.

정계개편 꼼수보다 윤 대통령이 자력으로 바로 서야 한다. 지난 대선 압도적인 정권교체 여론 속에서도 초박빙 진땀승에 민심의 절대적 동의를 얻지 못했다. 후보 본인의 실언과 부인 리스크 때문이었고, 그 족쇄를 지금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이 벽을 넘지 않고선 그 어떤 정치공학도 통할 리 없다.

박석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