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을 할수록 빠져들고 공부할 것도 많더군요. 돈도 안 되는 일이지만 계속하다 보니 시간이 자꾸 흐르더라고요. 영화음악이니 무용음악이니 맡은 작곡도 하다 보니 앨범 낼 시기를 놓친 거죠."
최근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일보에서 만난 김수철(68)의 말이다. 이달 초 그는 33년 만의 정규 가요 앨범인 '너는 어디에'를 냈다. '45주년 기념 앨범'이라는 부제를 단 앨범은 2002년 국악 앨범 ‘기타산조’ 이후로도 22년 만이다. 발표할 곡이 없어서 앨범을 내지 않은 건 아니다. 쌓여 있는 미발표 곡이 1,000개가 넘는다. 지난해 그는 갑자기 앨범 제작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겼다. 오랜 꿈이었던 ‘동서양 100인조 오케스트라’ 공연을 마친 뒤였다.
앨범 수록곡은 8곡. 시간이 멈춘 듯, 청년 김수철 시절의 음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작사, 작곡, 연주, 편곡을 대부분 혼자 했다. 앨범 커버는 오랫동안 일기처럼 그려온 그림 중 하나를 골라 썼다.
첫 곡은 ‘너는 어디에’. “가난해도 꿈은 내 곁에 있었지 / 힘이 들고 지쳐서 쓰러졌어도”라고 노래한다. “어렸을 때 꿈과 우정을 이야기하던 친구들은 다 어디 갔지, 하고 물으며 우정과 꿈을 그리워하는 내용입니다. 어른이 돼 사회에 적응하다 보면 꿈을 잃고 돈 번 이야기, 자식 이야기, 노후대책 이야기만 하잖아요.”
중학생 때 처음 기타를 잡은 이후 줄곧 음악이라는 꿈만 좇다 60대가 된 김수철의 이야기는 ‘나무’로 이어진다. 앨범의 주제가 담긴 곡이다. “예전엔 대립하고 충돌하면서도 이야기를 하고 주고받는 게 있었는데, 이젠 그런 게 사라졌어요. 마지막 남은 것까지 주는 나무의 참사랑이 절실한 요즘입니다.”
앨범은 조용한 발라드로 시작해 요즘의 ‘젊은 그대’들에게 바치는 경쾌한 로큰롤 곡이자 장대한 프로그레시브 록 넘버인 10분짜리 대곡 ‘야야아자자’로 끝난다. 마지막 곡은 오랫동안 천착해온 국악과 양악의 융합을 다룬 ‘기타산조’다. “전통 음악 그대로의 국악이 아니라, 전통을 토대로 현대화한 음악이에요. 젊은 세대가 긍지를 가질 만한 우리만의 문화 콘텐츠가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냐는 생각으로 평생 물고 늘어졌어요.”
김수철은 1977년 대학 1학년 때 밴드 '퀘스천'의 멤버로 방송에 처음 출연한 뒤 1979년 밴드 ‘작은 거인’의 첫 앨범을 내며 데뷔했다. 그의 부모는 음악하는 걸 반대했다. 음악을 그만두기 전 마지막으로 내려던 솔로 앨범에서 ‘못다핀 꽃 한송이’ ‘내일’ 등이 히트하며 전업 음악가가 됐다. 이후 응원가로도 유명한 ‘젊은 그대’와 애니메이션 ‘날아라 슈퍼보드’ 주제가인 ‘치키치키 챠카챠카’도 히트했다. 1988년 영화 '칠수와 만수'에 쓰인 '무엇이 변했나'에선 국내 가요 최초로 랩을 시도했다.
1980년대 후반 이후 국악에 빠져 ‘황천길’ ‘팔만대장경’ 등의 앨범을 냈다. 국악 앨범이기도 한 영화 ‘서편제’(1993) 사운드트랙은 100만 장 이상 팔렸다. 1986 서울 아시안게임과 1988 서울 올림픽, 2002 한일 월드컵 음악을 맡았다. 친구인 배우 안성기의 추천으로 영화 ‘고래사냥’(1984)에 주연으로 출연해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을 받기도 했다.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으로 시작하는 KBS 로고송도 그가 작곡했다.
김수철은 지금도 음악만 생각하며 사는 '음악 청년'이다. 기타를 치기 위해 하루 세 갑씩 피우던 담배도, 밤새 마시던 술도 40세 이후 끊었다. 오랜만에 앨범을 냈으나 단독 콘서트를 열지는 미정이다. “제가 좀 미련한 게 계획성이 없어요. 공부하고 연습하고 열심히 살 뿐이죠.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났으니 더 늦기 전에 해야겠다고 한 게 100인조 오케스트라 공연이었고 앨범까지 내게 됐어요. 앞으로도 그저 꾸준히 음악을 해야겠다 생각할 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