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유일 ‘성병관리소’ 철거 논란

입력
2024.08.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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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동두천 등 경기도 내 6곳 운영
성병에 걸린 여성 수용, 관리하던 시설
전 세계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
동두천시 "소요산 개발 위해 철거 계획"
시민단체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설"

지난달 30일 찾은 경기 동두천시 소요산 입구. 주차장 남쪽 도로변에는 출입통제용 철조망이 설치돼 있었는데 철조망 안쪽으로 수풀로 뒤덮인 오래된 건물 한 동이 눈에 들어왔다. 전 세계에 하나밖에 남아있지 않은 ‘성병관리소’ 건물이다. 1996년 폐쇄된 이후 28년째 방치돼 있어 흰색 페인트는 대부분 벗겨졌고 운동장으로 쓰였던 마당은 잡초가 무성했다.

성병관리소는 1973년 초부터 주한미군을 상대하는 기지촌 여성들이 성병에 걸릴 경우 수용, 관리하던 시설로 ‘낙검자 수용소’라 불리기도 했다. 수용자 중에 페니실린 등 약물 과다투여로 쇼크사하거나 탈출하려다 숨지는 사례도 있었다. 관리소는 ‘몽키하우스’라고도 불렸다. 수용자들이 철창 안에 갇힌 원숭이 신세 같다는 의미였다. 당시 경기도에만 양주와 동두천, 의정부, 파주(2곳), 평택 등 6곳이 설치됐다. 동두천 성병관리소의 경우 부지면적 6,766㎡에 2층 건물로 세워졌으며, 방 7개에 20명씩 모두 140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이들 시설은 1993년 대부분 운영을 중단했는데 동두천 성병관리소도 1996년 보건소 조직 내 성병관리팀이 없어지면서 폐쇄됐다. 6곳 중 남아 있는 건물은 동두천 성병관리소가 유일하다.

1970~80년대 미군기지 인근 클럽에 등록된 기지촌 여성들은 일주일에 2회씩 의무적으로 성병 검진을 받아야 했고 이를 증명하는 ‘검진증’을 소유해야 했다. 기지촌 여성들은 미군 및 한국군의 불시 검문 시 검진증이 없으면 성병관리소에 바로 수용됐다. 정부가 사실상 미군 상대 성매매를 조장하고 관리한 증거다. 최희신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 활동가는 “당시 성병이 급속도로 확산됐는데 왜 기지촌 여성들만 잘못한 것처럼, 여성만 검진을 받고 수용돼야 했는지 아무도 항변하지 못했다”며 “더욱이 클럽 여성이 아닌 일반 여성을 상대로 검문을 실시해 수용시설로 데리고 갔다는 말도 있을 정도로 당시 여성 인권은 무시됐다"고 말했다.

시민행동 측은 우리 정부가 저지른 여성들에 대한 인권침해의 역사를 고발하고 반성하자는 의미에서 이 시설을 철거하지 말고 보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동두천시가 한국전 당시 노르웨이군 야전병원으로 쓰였던 '노르매시' 건물을 근대문화유산에 등재신청한 점을 감안하면 이 역시 보존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최 활동가는 “경기도와 동두천시는 성병관리소도 근대문화유산에 등재해 한반도의 전쟁과 분단을 평화와 치유로 전환할 수 있는 역사·문화·교육의 장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민행동 측은 56개 시민단체들과 연대해 지난 12일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철거 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출범시켜 본격적인 철거 반대 운동에 들어갈 뜻을 밝혔다.

반면 동두천시는 사유지였던 해당 부지를 지난해 2월 ’소요산관광지확대 개발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매입한 뒤 철거하겠다는 입장이다. 성병관리소를 철거해 호텔과 테마형 상가 등으로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달 말 추경예산(안)에 성병관리소 철거비용 2억2,000만 원을 포함시켰다. 시 관계자는 “지난해 부지 매입 후 시민의견 청취, 여론조사 등을 실시했는데 상인 및 주민 60% 이상이 철거를 희망했다”며 “8월 27일 임시회가 열려 추경이 확정되면 사업 추진을 본격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임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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