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엔 기관사가 구로역 바닥서 지하철 기다렸어요"

입력
2024.08.1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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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개통 지하철 '1호 기관사' 조상호씨
일본 기술진과 기싸움 "내가 기관사"
"세계 1위 지하철 동료·후배와 이룬 결실"

"북한보다 뒤처졌던 서울 지하철은 지금 세계 1위가 됐습니다. 후배들도 1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65세 이상 무임승차' 등으로 인한 만성적자 해결을 위해 서울시와 정부도 지원해야 합니다."

서울 지하철이 공식 개통한 1974년 8월 15일, 전동차를 직접 운전했던 '1호 기관사' 조상호(84)씨는 7일 한국일보와 만나 서울 지하철의 역사를 이렇게 돌아봤다. 개통 당시 1개 노선 10개 역(서울역~청량리) 총연장 7.8㎞였던 서울 지하철은 현재 8개 노선 275개 역 298㎞(서울교통공사 운영 기준)로 확대됐다. 덕분에 시민들은 서울과 수도권 구석구석까지 값싸고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영국 부동산 개발회사 에센셜 리빙이 가장 이용객이 많은 도시 지하철 10개 대상으로 접근성·편의성·인프라 등 8개 기준으로 연구한 결과 서울 지하철이 1위에 올랐다. 일본(1927년 개통), 중국(1969년), 북한(1973년)보다 늦게 개통했지만, 50년 만에 세계 최고로 올라선 것이다. 조씨는 "동료와 후배들이 모두 열심히 일한 결과"라며 "세계 최고의 교통 서비스를 제공하는 점을 시민도 알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경북 안동에서 7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그는 군복무를 마친 뒤 1964년 철도청에 입사해 차량 수리(검수직)와 기관사 보조(기관조사) 업무를 맡다 뒤늦게 기관사가 됐다. 박정희 정권이 서울 지하철 건설을 추진하면서 기관사가 필요했던 서울시의 요청으로, 그를 비롯한 철도청 기관사 일부가 1973년 10월 서울시 지하철건설본부로 전입했다.

기관사들은 전동차 구조, 각종 기기 및 장치 작동 원리, 전기전자 이론 등을 공부했다. 1호선에 운행될 일본 히타치산 전동차가 74년 4월에야 처음 국내에 들어오기로 돼 있어, 전동차를 직접 몰기 전까지 운전실 기기 도면과 이를 토대로 한 그림을 보고 훈련할 수밖에 없었다.

"시운전 때 동승한 일본 기술진, 내 손 잡아 자존심 상해"

드디어 1974년 4월 12일 첫 시운전 날, 조씨가 운전대를 잡았다. "서울역 한쪽에 정차된 전동차를 운전해 승강장으로 나올 때 일본 기술진 2명도 운전실에 동승했어요. 내가 시동 버튼을 누르고 브레이크 핸들을 잡으니까 옆에 있던 일본 기술진이 내 손 위에 자기 손을 얹더군요. 자존심 상했죠. 짧은 일본어로 '와타시와 기칸슈데스'(내가 기관사입니다)라고 하고 살며시 밀어냈죠. 그 사람도 웃습디다."

서울역에서 종각역까지 2.2㎞를 시운전하고 정차할 때 쏟아지는 언론 카메라 플래시에 눈이 부셔 열차를 제 위치에 정차하기 어려웠다. 조씨는 "그때 30㎝ 규정을 못 맞췄는데, 이후 서울역에서 종각을 오가기를 몇 회 반복하며 심사를 잘 마쳤다"고 돌아봤다. 각종 언론 인터뷰도 쏟아졌다. 시운전 기관사로 뽑힌 이유를 묻는 단골 질문에 "전동차기술교육, 자체교육, 실무실습교육에서 모두 1등 하고, 동기인 다른 기관사들까지 교육했을 정도로 성적이 우수해 시운전자로 선발된 것 같다"고 답했다고 한다.

"박정희 참석 예정 개통식, 경호원들 갑자기 사라져 의아"

같은 해 8월 15일 개통식 당일도 생생히 기억했다. 이날은 격동의 한국 현대사 속 한 페이지와 맞물린다. 당초 박정희 대통령 내외가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개통식 불과 한 시간 전 육영수 여사가 피격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터졌고 대통령도 참석하지 못했다.

"개통식이 열릴 청량리역에서 장내 아나운서가 '대통령 내외분이 곧 도착하신다'고 방송하고 얼마 후 이상한 광경이 벌어졌어요. 대통령 각하가 앉을 전동차 내 자리에 놓인 방석과 행사장에 있던 대통령 휘장을 경호원들이 싹 치우고 사라졌어요. 테이프 커팅할 때 박 대통령은 안 왔고, 양택식 서울시장 표정이 어두웠어요. 운전을 마치고 택시를 타니까 육영수 여사 저격 뉴스가 나와 그때 알게 됐죠."

초창기 지하철을 처음 마주한 시민들은 신발을 벗고 타고, 정지선에 열차가 서 있으면 자기 앞까지 오라고 손짓하고, 신기해하며 전동차나 역사에 낙서하는 등 천태만상이었다고 기억했다.

기관사들의 소속이 달라 번거롭기도 했다. 구로역~인천 구간은 철도청이 운영해, 서울시 소속 지하철 기관사가 구로역까지 운전하고 내리고, 철도청 소속 기관사가 탑승해 교대했다고 한다. 그는 "기관사들이 서로 교대하는 구로역에 대기실이 없어, 인천발 서울행 열차가 다시 구로역으로 올 때까지 플랫폼 바닥에 (볏짚으로 만든) 가마니를 깔고 기다렸다"며 "그 이후에 협약을 맺어서 인천까지 쭉 운전하게 됐다"고 회상했다.

최근 자서전도 펴내 "이제 할 일 모두 마쳐"

그는 1977년까지 기관사로 일하다 기관사를 양성하는 승무사무소로 자리를 옮겼고 서울시 도시철도공사 운전처장까지 승진했다. 1990년대 후반엔 도시철도공사 신용협동조합 이사장이 됐고, 2000년 12월 퇴임했다.

은퇴 후에도 '1호 기관사'로서 자부심은 잃지 않았다. 최근 '세계 제일 서울지하철 1호 기관사'(비매품)라는 자서전도 펴냈다. "내가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누가 남길까 하는 생각에 올 초부터 수개월간 준비했어요. 제가 할 일은 이제 모두 마쳤네요."

박민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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