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인근. 35도에 가까운 폭염 속에 열린 수요집회(일본 정부의 위안부 책임을 촉구하기 위해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여는 집회)에 참석한 중학생 박다온(15)군이 힘주어 말했다.
이날은 국가가 기념일로 정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1991년 위안부 피해자인 고 김학순(1924~1997) 할머니가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 증언한 역사적인 날을 되새기기 위해 지정됐다.
1,661회 수요집회(세계 최장 집회 기록 계속 갱신 중)이기도 한 이 행사에서 박군은 "함께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들을 눈으로 보면서 연대의 힘을 느낀다"고 말했다. 함께 나온 친구들도 "같은 또래 10대 소녀들이 이런 일을 당했다니 끔찍하다"면서 "일본 정부가 반성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뜻을 모았다.
이날 수요집회는 8개국 145개 단체와 '세계연대집회'로 열렸다. '용기의 파도, 평화라는 해일'이라는 주제 아래 500여 명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와 정치인, 시민이 모였다.
참가자들은 일본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휘선 평화나비네트워크 전국대표는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피해자들과 활동가들이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아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그날이 올 때까지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정부에 대한 성토도 이어졌다.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일본 정부는 역사를 부정하고 한국 정부는 그 공범이 돼 역사 지우기에 함께 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비슷한 시간 정부는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식을 따로 열었다. 여성가족부 주관 행사에는 피해자 이용수(96) 할머니를 비롯해 정부 및 국회 관계자 등 180여 명이 참석했다. 신영숙 여가부 차관은 기념사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분들의 안정된 생활을 지원하고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위안부 기림일이자 광복절(다음 날)을 맞아, 주요 단체들은 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 관장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열린 '광복79주년 국회-시민사회 1000인 선언식'에서, 이홍정 자주통일평화연대 상임대표의장은 "정부는 독립기념관 등 주요 국책기관들을 친일식민근대화론자들 손에 맡기며 역사 개조를 자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관장은 해방일인 1945년 8월 15일보다 3년 뒤 같은 날인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이 '진정한 광복'이라고 주장하며 '뉴라이트 논란'에 휘말린 상태다.
광복절 정부 행사에 참석하지 않기로 한 광복회도 "대한민국이 1948년에 건국됐다고 억지 주장하는 인사가 독립기념관장이 된 것은 독립기념관의 정통성에 반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48개 역사학회 및 단체도 성명을 내고 "전례와 건립 취지에 반하는 인사가 임명된 것은 역사를 역행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