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회계를 이유로 금융당국이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내린 제재가 취소돼야 한다는 1심 법원 판단이 나왔다. 회계 처리에 일부 문제가 있었지만, 금융당국 제재의 전제가 틀렸기 때문에 전체 처분이 모두 취소돼야 한다는 취지다. 2018년 제재가 나온 지 6년 만에 나온 사법부의 첫 결론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부장 최수진)는 삼성바이오가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를 상대로 낸 시정요구 등 취소 청구 소송에서 14일 원고 승소 판결했다. 이번 사건은 증선위가 삼성바이오를 상대로 내린 2차 제재 처분에 대한 것이다.
앞서 증선위는 삼성바이오가 2015년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에피스)에 대한 지배력 관련 회계 처리를 한 것은 고의 분식회계라고 결론 냈다. 그러면서 △대표·임원 해임 권고 △과징금 80억 원 △재무제표 재작성 등 제재를 결정했다. 삼성바이오는 2015 회계연도에 에피스에 대한 회계 처리 방식을 갑자기 변경(종속기업→관계기업)했는데, 그 결과 기업 자산가치가 2,900억 원에서 4조8,000억으로 부풀려지는 등 총 4조5,000억 원 규모의 분식회계가 이뤄졌다는 게 증선위 판단이었다.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권 승계 문제와도 이어져 있다. 제일모직이 삼성바이오의 대주주였다는 게 연결고리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이 회장은 물산 주식은 없었고 모직 주식만 23.2% 보유했다. 결국 삼성바이오 가치가 커지면 제일모직의 기업 가치가 올라가고, 양사 합병에서 모직 주주인 이 회장이 유리한 비율을 받아낼 수 있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재판부는 첫 번째 처분 사유인 회계 처리 오류 부분에 대해선 "회계 처리 기준 위반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봤다. 증선위는 삼성바이오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재무제표를 작성·공시하면서 에피스를 종속기업으로 해 연결재무제표(지배·종속기업의 자산, 부채 등을 합쳐 하나의 재무제표를 작성하는 것)를 작성한 점을 문제 삼았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는 삼성바이오 재량권 안에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2015년부터 2018년 반기까지 관련 자산 및 자기자본을 과대계상한 데에 대해선 증선위 제재가 가능하다고 봤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처분 경위를 고려하면 사실상 일체의 처분으로 이뤄졌다"면서 "첫 번째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 이상 취소 범위는 전체가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은 삼성바이오의 회계 처리에 일부 문제가 있었다고 본 것인데, 이는 서울중앙지법이 2월 이 회장의 분식회계·허위 공시 의혹 형사 사건에서 전부 무죄 판결을 내린 것과 차이가 있다. 이번 재판부는 "자본잠식 등 문제 회피를 주된 목적으로 특정 결론을 정해놓고 사후에 합리화하려 회계 처리를 하는 것은 삼성바이오에 주어진 재량권을 남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분식회계 부분에 대한 1심법원 판결이 일부 엇갈리면서 현재 진행 중인 이 회장 항소심에도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린다.
금융감독원은 판결 직후 설명자료를 내고 "재판부 판단을 존중한다"면서도 "판결 이유 중 처분의 절차적 하자가 없다고 본 점, 형사 1심과 달리 2015년 지배력 변경이 정상적 회계처리가 아니라고 판단한 점은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 증선위가 내린 '1차 제재'에 대한 불복 소송은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1차 제재는 주식매수청구권(콜옵션) 미공시에 관한 사안인데, 여기서도 삼성바이오가 1심에서 승소했다. 삼성바이오는 1·2차 제재 집행정지 신청에서도 인용 결정을 받아내, 현재 증선위 처분은 효력이 정지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