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원장까지... 조직 취지 엇가는 인사가 갈등 키워

입력
2024.08.14 00:10
23면

안창호 전 헌법재판관의 인권위원장 후보자 지명을 두고 시민단체 반발이 거세다. 성소수자를 향해 반인권적 발언을 서슴없이 하는 등 소수자 인권 보호에 역행하는 행보가 적지 않았던 인물이다. 인권 보호 최전선에 서야 하는 자리에 굳이 인권감수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인사를 앉혀야 하는가. 인권위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 그 수준을 향상시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설립 취지다.

그제 윤석열 대통령이 신임 국가인권위원장 후보자로 지명한 안 전 재판관은 2018년 9월 임기를 마친 후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동성애에 반대하는 법률가모임에 참석하며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행동에 적극 나서왔다. 그는 2020년 한 세미나에서 “차별금지법 시행은 공산주의 혁명으로 가는 긴 행진의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했고, 한 칼럼에서는 “(법이 시행되면) 초중고교에서는 동성애자 채용을 거부할 수 없게 된다”며 채용 차별을 당연시했다. “(에이즈) 질병을 예방하는 차원에서라도 반동성애 운동을 하는 것 아니겠느냐”는 등 혐오 발언도 거침없었다.

안 후보자의 개인적 소신을 존중한다 해도, 그가 수장을 맡게 될 인권위와 입장이 정면충돌하는 건 그냥 넘길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인권위는 “국제사회 요청에 응답해야 한다”며 줄곧 차별금지법 제정을 국회에 요구해왔다. 그가 수장이 되면 인권위 입장이 180도 달라져야 할 판이다. 그는 헌법재판관 시절에도 양심적 병역거부, 낙태죄, 사형제 등 주요 인권 쟁점에서 국제사회와 인권위가 견지해온 입장과 다른 인식을 노출해왔다. 유엔에서 우려 서한을 보낼 정도인 일부 상임위원의 반인권적 폭주와 맞물린다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아찔하다.

이번 인사는 극심한 정쟁을 낳고 있는 독립기념관장 논란과도 맥이 닿아 있다. 독립운동 정신을 기리는 독립기념관 수장 자리에 굳이 독립운동과 임시정부 정통성을 부정하는 듯한 인식을 보이는 인사를 앉혀야 했느냐는 게 비판의 핵심이다. 고용노동부에 반노동적 시각의 장관을, 방송통신위원회에 방송 장악 의지를 보이는 위원장을 앉히는 인사 역시 매한가지다.

단순히 자기 사람을 꽂는 낙하산 인사와는 차원이 다르다. 낙하산도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려고는 하겠지만, 조직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인사는 조직의 정체성을 뿌리째 흔들 수 있다. 이런 부적절한 인사가 사회 갈등의 진원이라는 걸 지금이라도 깨닫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