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 공격이 없을 수도 있고, 오늘 밤에 단행될 수도 있다. 죽음을 기다리는 건 죽음 자체보다도 고통스럽다."
12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전한 이란 정권 내부자의 발언이다. 지난달 31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정치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가 암살되자, 즉각 '가혹한 대응'을 공언했음에도 2주 가까이 이란이 대(對)이스라엘 보복 공격에 나서지 않는 데 대한 설명이었다. 적을 긴장 상태에 빠뜨리려는 '의도된 심리전'이라는 얘기다. 한편으로는 이란 지도부가 '응징'과 '전면전 위험' 사이에서 고심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란의 보복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관측은 이날도 어김없이 나왔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존 커비 미 백악관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란과 그 대리 세력이 며칠 안에 이스라엘을 공격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게 이스라엘과 우리의 평가"라고 밝혔다. 이어 "(이란의 보복은) 이번 주가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폭스뉴스도 "24시간 안에 이란 측이 이스라엘 공격에 나설 수 있다"고 이날 보도했다.
중동의 긴장감도 고조되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최고 수준 경계 태세'를 발령했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TOI)은 "이란의 공격 시 사상자가 없다 해도 이스라엘은 '맞보복' 대응을 확정했다"고 전했다. 미국 국방부는 유도미사일 잠수함, 에이브러햄 링컨 항공모함 타격단 등을 중동에 추가 배치했다.
다만 이란의 공격을 앞둔 이스라엘 지도부 내 파열음도 감지된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이날 의회 비공개회의에서 '이란 위협 대비 태세 강화'를 설명하며 "'절대적 승리' 같은 횡설수설이 들려 온다"고 말했다. "절대적 승리 쟁취 때까지 계속 싸울 것"이라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평소 발언을 저격한 것이다.
총리실은 즉각 성명을 내고 "반(反)유대주의 서사를 지지하면 휴전 협상이 되레 위태로워진다"며 갈란트 장관을 질책했다. 하지만 갈란트 장관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나는 하마스 해체와 인질 귀환 때까지 계속 싸우겠다고 강조했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정치 생명 연장'을 위해 전쟁 지속에만 골몰하는 네타냐후 총리와, '인질 석방·휴전'에 좀 더 무게를 두는 갈란트 장관은 수차례 의견 충돌을 빚어 왔다.
이란의 보복이 언제, 어떤 강도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공격 방법도 베일에 싸여 있다. 지난 4월 사상 첫 이스라엘 본토 공격(미사일·무인기 약 300기)보다 더 강한 공세가 예상되지만, 이란 역시 확전 부담 때문에 대응 수준을 정하기 쉽지 않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이란이 최근 대리 세력 지도자들과의 비공개 회의에서 '전면전 억제를 위해 무력 수위를 조절하라'고 요구했다"며 내부 신중론을 전했다.
그러나 이란 정권 내 온건파가 줄어드는 현 상황은 예사롭지 않다. TOI에 따르면 온건 개혁 성향인 마수드 페제시키안 신임 이란 대통령이 전략담당 부통령으로 지명한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전 외무장관은 임명 11일 만인 이날 전격 사임했다. 그는 '내각 장관 인선 과정에 강경파 입김이 너무 세다'며 불만을 표출했다고 한다. NYT는 "확전 가능성이 제기되는 시점에 나온 자리프의 사임 소식은 충격적"이라고 짚었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서방 5개국 정상은 이란에 '자제'를 촉구하는 공동 성명을 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13일 중동으로 급파돼 긴장 해소 및 대응 방안 논의에 나선다. 이란 정부 관계자는 FT에 "(보복 관련 불확실성은) 이스라엘이 군사·안보·물류 역량을 긴장 상태로 유지하도록 만들려는 심리전의 일환"이라며 당분간 현 상태가 이어질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