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한복판 햇살이 너무 뜨거워서 걷는 일조차 마루고 싶을 그 즈음, 자꾸 자꾸 마음이 가는 식물은 무궁화입니다. 평생을 공적 기관에서 식물일을 하다 보니, 뭐든지 식물과 연결해 생각하는 습관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8·15 광복절 즈음 쨍한 계절에 의연하게 피고 지고 또 피어나는 그 장한 모습을 제대로 만난 뒤로는, 유독 그 대견함이 마음이 들어왔습니다. 여름이면 곳곳에서 무궁화 전시도 열리고 하지만 나라 꽃이라는 의미와 위상에 걸맞게 모든 국민들에게 마음으로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싶은 안타까움이 항상 들어 무궁화를 위해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의 짐도 있습니다.
우리 것에 대한 열정이 각별한 국민들이 무궁화에 집중하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봅니다.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을 상징하던 무궁화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심겨졌던 원인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무궁화를 만나서 아름답게 느끼고 행복했던 시간적 공간적 공유가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은 아닐까도 생각합니다. 사실 한여름 더위 속 개량된 무궁화 종류들을 일렬로 세워놓은 장소에서 무조건 나라꽃이라서 사랑하기는 어려우니까요.
국립세종수목원에서 일하면서 하고 싶었던 일은 무궁화가 있는 멋진 정원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다양한 식물들이 있어 조화롭고 아름답지만 그중에서 여름에 한껏 피어나는 무궁화가 주인공인 정원, 산책로에 높낮이가 있어 위에서도 아래서도 다양한 무궁화의 모습을 만나는 정원. 그늘이 있는 안락한 공간에서 시원하고 편안하게 무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정원, 언젠가 그 곁에 히비스커스(무궁화집안을 통털어 부르는 속명)차나 아름다운 꽃잎이 담긴 음식(무궁화집안은 식용, 약용으로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을 맛볼 수 있고, 무궁화의 그림이나 사진에 함께 전시되는 세련된 까페가 있다면 더욱 좋겠다 싶었습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을 무궁화를 잘 돌보아 우아하고 아름다운 큰 나무로 키우는 것입니다.
무궁화는 그 큰 꽃 한송이가 하루 피고 지고 또 다른 송이가 피고 지기를 여름내 계속합니다. 한 그루의 나무에 100일 동안 3,000송이, 개체에 따라서는 5,000송이가 피기도 한답니다.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할지 상상이 가시는지요. 그래서 비료도 아주 많이 주어야 하고, 가지를 잘 다듬어 주어야 꽃이 피는 가지가 계속 이어집니다. 물론 병해충관리도 해주어야 하는데 장미만큼은 아닙니다. 무궁화는 정성을 들여 귀하게 키워야 귀한 모습이 되는데 우리는 그동안 가지를 잘라 삽목하여 꽂아 두고 놓아둔 탓도 많습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장소에 가보면 요즘 배롱나무가 한창입니다. 배롱나무가 서원이나 사찰에서 가장 돋보이는 장소에 심겨져 있는데 왜 우리의 무궁화는 그렇게 공들여 딱 맞는 장소에 심지 않았는지 아쉽기만 합니다. 강릉 사천면 강동리에 가면 천연기념물 520호로 지정된 무궁화가 있는데 매우 품격있습니다.
지금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제목의 무궁화전시를 하고 있는 국립세종수목원은 산림청에서 만든 '국립'기관인 만큼 다양한 전시는 물론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많은 품종의 혈통도 보존되고 문화로 연결되는 세밀화전시와 교육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특히 무궁화 '움찬세종'이라는 품종이 있는데 천연기념물이었으나 이젠 죽어서 사라진 안동과 백령도의 무궁화를 교배하여 만들어진 품종으로 그 부모 무궁화와 함께 잘 보전되어 있는 모습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장성의 무궁화동산이나 부산의 무궁화축제도 있습니다.
이번 광복절에는 전국 곳곳 무궁화 동산이나 정원에서 '아사달' '선녀' '원화' '불꽃' 등등 하나 하나 머무르며 꽃들을 만나는 일을 시도해 보면 어떨까요?! 어느덧 마음에 새롭게 우리 꽃 무궁화가 자리잡고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