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관 논란으로 광복회 등으로부터 퇴임 압력을 받고 있는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보다 1945년 해방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을 중심으로 제기된 1948년 정부 수립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해 오던 그간의 입장에서 한 발 물러선 것이다. 다만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안익태와 백선엽 장군 등에 대해선 "학문적 재검증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유지해 논란은 이어질 전망이다. 김 관장은 자진사퇴 의사가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김 관장은 12일 서울보훈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임명 적절성 논란의 배경이 된 건국절 제정 옹호 논란과 친일 역사관, 뉴라이트 성향 등에 대해 해명했다. 그는 "독립운동가를 폄훼하고 일제강점기의 식민지배를 옹호한다는 의미로 말하는 뉴라이트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광복회 등 독립유공자단체와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에서 김 관장에 대한 임명 철회를 요구를 불식시키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왔다.
김 관장을 둘러싼 가장 큰 논란은 건국절 논쟁이다. 이를 의식한듯 김 관장은 모두발언부터 "나는 건국절을 만들자고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건국절 제정을 추진할 때 독립기념관장직을 걸고 반대할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에 "역사학자로서의 양심을 걸고 분명히 반대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는 그간 김 관장이 학자로서 해 온 주장과 거리가 있는 발언이다. 김 관장은 지난해 12월 "대한민국이 1945년 8월 15일 광복됐다며 그게 광복절이라고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참 많은데, 역사를 정확하게 모르는 것"이라며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 15일이야말로 진정한 광복"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전날 한 언론 인터뷰에서도 "나에게 ‘1945년 광복과 1948년의 제헌, 둘 중에 어느 쪽이 중요한가’라고 물으면 단연코 후자"라고 답했다. 불과 하루 사이에 발언의 뉘앙스가 달라진 것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둘러싼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의 주장에 대해서도 결이 다소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김 관장은 '이 전 대통령과 백범 김구 선생을 함께 국부로 모시자'는 과거 주장에 "사인으로서 학자와 공인으로서 관장의 역할이 다르다"며 한 발 물러섰다. 그는 '이 전 대통령을 높이는 것이 임시정부와 4·19혁명을 계승하는 헌법에 위배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독립기념관장으로서 이 전 대통령을 건국의 아버지로서 추대할지에 대해선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애매하게 답했다.
친일파에 대한 판단에는 여전히 논란이 남을 만한 답변을 내놓았다.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과 관련해 "억울하게 친일파로 매도된 분들이 있어선 안 된다"며 취임 때 했던 얘기를 재차 확인했다. 특히 김 관장은 백선엽 장군의 일제시대 간토특설대 복무를 옹호했다는 지적에 대해 "이분(백 장군)이 간도특설대에 있을 때 108차례 토벌작전이 이뤄졌다"며 "일지를 보니 조선인 독립운동가 대상 토벌은 없다"고 주장했다. 백 장군이 1993년 펴낸 일본판 자서전에서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었고 (그 때문에)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밝힌 것과도 상반된 내용이다.
독립기념관장 지원자 면접 당시 그가 "일제시대 (우리 민족의) 국적은 일본"이라고 답한 점을 인정하면서 "그래서 국권을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을 한 것 아니냐고 답변했다"고 해명했다. 답변 과정에서 그가 "한일합방을 한 그 순간부터 우리는 국권을 빼앗기고 일본 국적으로 편입이 돼 버린 것"이라고 한 부분도 도마에 올랐다. 둘 이상의 나라가 하나로 합쳐졌다는 뜻의 '합방'이라는 표현은 일제의 강압에 의해 이뤄졌다는 사실을 배제하고 있어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